목중형(睦重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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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73년(현종 14)∼1730년(영조 6) = 58세.] 조선 후기 숙종~영조 때의 무신. 행직(行職)은 충주영장(忠州營將)⋅정읍현감(井邑縣監)이다. 자(字)는 정칙(正則)이다. 본관은 사천(泗川)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공주목사(公州牧使) 겸 공주진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목창우(睦昌遇)이고, 어머니 나씨(羅氏)는 나번(羅樊)의 딸이다. 호조 참판(參判)목장흠(睦長欽)의 증손자이고, 대사간목성선(睦性善)과 이조 참의(參議)목행선(睦行善)의 종손자이다. 남인 집안 출신으로서 영조 초기 <무신(戊申)의 난> 때 전라도 지방의 반군의 대장이 되어 영조와 노론 정권에 저항하였다.

숙종 시대 활동

1718년(숙종 44) 정시(庭試) 무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46세였다.[<무과방목>] 관직은 충주영장(忠州營將)⋅정읍현감(井邑縣監) 등을 역임하였으며, 품계는 정5품상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영조 시대 활동

1725년(영조 1) 충청도충주영장으로 있을 때 도둑떼를 잡아들이는 일에 소홀하여 도적이 고을에 넘쳐났으므로 파직당하였다. 이것은 노론(老論)의 사관(史官)들이 충주영장목중형을 헐뜯기 위해서 기록한 글이라고 생각된다.

1728년(영조 4) 전라도정읍현감으로 있을 때 청주의 남인 집안 출신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인좌의 난>이 전라도⋅경상도⋅충청도의 3남 지방으로 확대되었다. 소론의 중진 박필몽(朴弼夢)이 평안도 병마사이사성(李思晟)의 군사를 끌어들여 영조를 폐위하고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증손자 밀풍군(密豐君) 이탄(李坦)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전라도 지방에서 조관규(趙觀奎)와 조덕규(趙德奎) 등이 남인과 소론의 세력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정읍현감목중형을 위협하여 반군의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조관규와 조덕규는 경종 때 소론의 강경파 김일경(金一鏡)을 도와 노론 4대신을 죽이는 데에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영조는 관군을 보내어 3남 지방의 <무신(戊申)의 난>을 간신히 진압하고, 역모를 꾀한 조관규와 조덕규 등을 처형하고, 정읍현감목중형을 유배하였다.

1730년(영조 6) 영조가 <이인좌의 난>과 <무신의 난>에 연루된 죄수들을 일괄 석방할 때 목중형도 유배에서 풀려났다. 목중형이 유배에서 풀려날 때에 그 죄상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여, 다시 체포되어 6차례에 걸쳐 형신(刑訊)을 받다가 죽었다. 그러나 목중형은 자백할 것이 없다고 버티며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였다.

부인과 후손

경주김씨(慶州金氏)는 김세황(金世璜)의 딸이다. 슬하에 아들이 없었는데, 친척 형제인 목천제(睦天齊)의 아들인 목광원(睦光遠)을 양자로 들이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영조]
  • 『무과방목(武科榜目)』
  • 『서원등록(書院謄錄)』
  • 『여호집(黎湖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