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경변(韓史綮辨)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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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한사경변 |
한글표제 | 한사경변 |
한자표제 | 韓史綮辨 |
분야 | 학술연구서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일제시대 |
왕대 | 일제시대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맹보순, 이병선 |
간행처 | |
간행년일 | 1924 |
권책수 | 1책 |
사용활자 | 신활자본 |
표제 | 한사계변(韓史綮辨) |
소장처 |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한사경변(韓史綮辨) |
이 책은 김택영(金澤榮)이 편찬한 조선왕조사인 『한사경(韓史綮)』에 대한 비판서다.
개설
이 책은 1918년 『한사경』이 출간되자, 이에 대한 비판서가 유림에 의해 나왔으며, 그 가운데 『한사경변(韓史綮辨)』의 명칭으로 나온 것은 맹보순(孟輔淳) 편집본과 이병선(李炳善) 편집본의 두 종류가 있다.
맹보순 편집본은 한흥교(韓興敎) 외 101명의 연서로 유림총부(儒林總部)에서 1924년 간행하였다. 이 책은 1923년 9월 「조선일보」에 연재된 『한사경』에 대한 반론의 전문을 정리한 것으로 머리말, 본문, 총론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162조에 걸쳐 『한사경』의 내용을 반박하고 있다.
이병선 편집본은 태극교 본부(太極敎本部)에서 1924년 편간한 것으로 213조에 걸친 반박문 외에 ‘통고문(通告文)·성토문(聲討文)·경성신사찬동자개략(京城紳士贊同者槪略)·지방신사찬동자개략(地方紳士贊同者槪略)’을 첨부하고 있다.
김택영이 『한사경』에서 선왕과 선현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적어 이들의 실정과 부도덕을 강조함으로써 이를 통해 망국의 원인을 찾으려 하였던 것에 반해, 『한사경변』에서는 왕권을 옹호하여, 군주에 의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한사경변』은 주자학적 논리를 지키고, 군주와 선현에 대해서는 충절을 다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도덕의식에서 나온 책이다.
편찬/발간 경위
『한사경』은 김택영이 1913년에 처음 간행한 ‘조선시대사(朝鮮時代史)’로 조선 태조(太祖)부터 양제(讓帝, 순종(純宗))까지 23왕, 2제, 2폐주(廢主) 도합 519년의 역사를 6권으로 정리한 것이다. 인용 서목이 『대동기년(大東紀年)』,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매천야록(梅泉野錄)』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당의통략(黨議通略)』, 『산제징신록(山齋微信錄)』 등의 자료를 보충하여, 1918년 한문림서국(翰墨林書局)에서 재차 간행하였다. 『한사경』에는 총 50편의 사론(史論)이 실려 있다. 중요한 특징은 태조, 태종, 세조, 성종, 선조, 영조 등 조선 역대 국왕에 대해 ‘이도군위(以盜君位)’, ‘만세지대악야(萬世之大惡也)’, ‘찬공양왕위(簒恭讓王位)’, ‘선조지불명불홍여차(宣祖之不明不弘如此)’ 등과 같은 표현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4당분위(四黨分位)를 개탄하며, 당쟁의 기원과 경과, 폐단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당쟁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의 시비를 밝히고 있다. 선왕과 당쟁에 대한 이와 같은 김택영의 신랄한 비판은 국내 유림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중 대표적인 반박서가 1924년 이병선이 간행한 『한사경변』이다.
서지 사항
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활자본이다. 4주쌍변이고, 반곽은 17.4×11.2cm이다. 10행 23자의 유계, 백구(白口), 상하향흑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23.5×15.3cm이며,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에는 태조기(太祖紀)부터 양제기(讓帝紀)까지의 『한사경』 기사를 조목 별로 반박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재위 임금 단위로 구분하여 기술하고 있으며, ‘변왈(辨曰)’로 시작되는 부분에 반박 대상문을 직접 인용하고, 그 아래에 간지(干支)로 출전을 명시하였다. 이에 대한 반박문은 ‘변왈’로 시작되는데, 『한사경』의 내용보다 한 글자를 대두하였다.
이 책의 반박 대상에는 『한사경』의 서문을 비롯하여, 김택영이 태조를 찬역(簒逆)으로 표현한 점과 태종을 이적(夷狄)으로 기술하고, 영조와 고종을 비판한 점이다. 아울러 ‘승무십팔현(陞廡十八賢)’을 당파 세력이라, 표현한 부분도 큰 반발을 야기했다. 『한사경변』의 후반부에는 김택영에 대한 성토를 호소하는 ‘통고문(通告文)’과 1923년 성토를 주도한 ‘태국교내사적성토소(太極敎內史賊聲討所) 소속 인물들이 적은 ’토사적금택영문(討史賊金澤榮文)‘, ’경기신사동성인원개략(京畿紳士同聲人員槪畧)‘, ’지방신사동성인개략(地方紳士同聲人員槪畧)‘ 등의 명단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김택영이 『한사경』에서 선왕과 선현의 실정과 부도덕을 강조함으로써, 망국의 원인을 찾으려 하였던 것에 반해, 『한사경변』에서는 왕권을 옹호하여, 군주에 의한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입장에서 주자학적 논리를 지키고, 군주와 선현에 대해서는 충절을 다해야 한다는 일제강점기 조선 지식인의 대조적인 역사관과 시대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에서는 왕권을 옹호하여, 군주에 의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주자학적 논리를 지키고, 군주와 선현에 대해서는 충절을 다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도덕의식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승룡, 「한국문학사에 있어서 소수집단 문학의 존재와 위상: 김택영(金澤榮)의 송도(松都) 복원 작업의 의미–방법으로서의 디아스포라-」, 『고전문학연구』 제29권, 한국고전문학회, 2006.
- 송혁기, 「曺兢燮의 金澤榮 諸家文評 비판과 그 비평사적 의의」, 『동양한문학연구』 제22집, 동양한문학회, 2006.
- 윤지훈, 「외래 도서가 한국한문학의 발전에 끼친 영향의 탐색-귀유광(歸有光)에 대한 조선후기 문인들의 인식과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동방한문학』 제66권, 동방한문학회, 2016.
- 조남호, 「金澤榮의 天符經 주석 연구」, 『동서철학연구』 제45호, 한국동서철학회, 2007.
- 최혜주, 『창강 김택영의 한국사론』, 한울, 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