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익(具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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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37년(영조 13)∼1804년(순조 4) = 68세.] 조선 후기 영조~순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병조 판서, 돈녕부 지사(知事)이다. 자(字)는 익지(翼之)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병조 판서와 의금부 판사(判事)를 지낸구윤옥(具允鈺)이고, 어머니 안동김씨(安東金氏)는 김우갑(金禹甲)의 딸이다.

영조 시대 활동

1761년(영조 37) 정시(庭試) 문과의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25세였다.[<문과방목>]

1765년(영조 41) 왕이 실시한 친시(親試)에서 강독을 잘하였다고 승륙(陞六)하여 사간원 정언(正言)이 되었으며, 특별히 홍문관 수찬(修撰)에 임명되었다.

1768년(영조 44) 사간원 헌납(獻納)을 거쳐서, 이듬해 사간원 사간(司諫)으로 승진하였다.

1770년(영조 46) 승정원 승지(承旨)로 발탁되었으며, 1772년(영조 48) 도승지(都承旨)로 영전하였다. 이후 5년간 주로 승지로 재임하면서 영조의 신임을 받았다.

1775년(영조 51) 대사헌(大司憲)이 되었다가, 이조 참판(參判)에 임명되었다.

정조 시대 활동

1776년(정조 즉위) 다시 대사헌이 되었으며, 1779년(정조 3)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외방으로 나갔다.

1790년(정조 14) 한성부 판윤(判尹)이 되었다가, 1791년(정조 15) 공조 판서를 거쳐서, 이듬해 형조 판서에 임명되었다.

1796년(정조 20) 병조 판서에 임명되었고, 1799년(정조 23) 함경도 관찰사가 되어 외방으로 나갔다. 이후 돈녕부 지사(知事)가 되었다.

순조 시대 활동

1804년(순조 4) 7월 29일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이 68세였다.

후손

부인 신씨(申氏)는 신희(申暿)의 딸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일성록(日省錄)』[영조]『일성록(日省錄)』[정조]
  • 『국조방목(國朝榜目)』
  • 『가암유고(可庵遺稿)』
  • 『관암전서(冠巖全書)』
  • 『명의록(明義錄)』
  • 『수정재집(壽靜齋集)』
  • 『수촌집(水村集)』
  • 『심리록(審理錄)』
  • 『임하필기(林下筆記)』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호곡집(壺谷集)』
  • 『홍재전서(弘齋全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