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취선(睦取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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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74년(선조 7)∼1619년(광해군 11) = 46세.] 조선 중기 선조~광해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홍문관 수찬(修撰)⋅사간원 정언(正言)이고, 증직(贈職)은 예빈시 정(正)이다. 자(字)는 집중(執中)이고, 호(號)는 죽오(竹塢)⋅죽일(竹一)이다. 본관은 사천(泗川)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의금부 도사(都事)목수흠(睦守欽)이고, 어머니 청주한씨(淸州韓氏)는 한총(韓叢)의 딸이다. 이조 참판목첨(睦詹)의 손자이고, 도승지목장흠(睦長欽)의 조카이다. 영의정목내선(睦來善)의 4촌 형이고, 승지목천성(睦天成)의 조부이다.

선조 시대 활동

1601년(선조 34) 사마시(司馬試) 진사과(進士科)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28세였다.

1606년(선조 39) 증광(增廣)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33세였다.[<문과방목>]

1607년(선조 40) 승정원 주서(注書)가 되었다.

광해군 시대 활동

1609년(광해군 1) 사간원 정언(正言)에 임명되어, 세저시강원 사서(司書)를 겸임하였다.

1617년(광해군 9) 함경도 도사(都事)로 나갔다. 그 뒤에 홍문관 수찬(修撰)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坪內洞)에 있다. 죽은 뒤에 예빈시 정(正)에 추증되었다.

부인 창원황씨(昌原黃氏)는 황치경(黃致敬)의 딸이다.[<방목>] 아들 목림종(睦林宗)은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고, 손자 목천성(睦天成)은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承旨)를 지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만랑집(漫浪集)』
  • 『아계유고(鵝溪遺稿)』 『여와집(餘窩集)』
  • 『현주집(玄洲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