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세창(慶世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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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생몰 연대 미상.] 조선 중기 성종~중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대사간(大司諫), 도승지(都承旨)이다. 자(字)는 무숙(茂叔)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덕천군수(德川郡守)경상(慶祥)이고, 어머니 고성이씨(固城李氏)는 이질(李垤)의 딸이다. 영의정노사신(盧思愼)의 처조카이다.

성종 시대 활동

1483년(성종 14) 사마시(司馬試)의 생원과(生員科)와 진사과(進士科)에 모두 합격하였다.[<사마방목>]

1494년(성종 25) 별시(別試)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문과방목>]

연산군 시대 활동

1503년(연산군 9) 사간원 헌납(獻納)을 거쳐서, 1504년(연산군 10) 사헌부 장령(掌令)에 임명되었으나, 그 해에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중종 시대 활동

중종반정 이후, 1506년(중종 1) 홍문관 교리(校理)가 되었다가, 1507년(중종 2) 홍문관 응교(應敎)로 승진하였다. 그해에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전임되었으며, 이어 사헌부 집의(執義)로 승진하였다.

1508년(중종 3)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되었고, 1510년(중종 5) 대사간(大司諫)을 거쳐서, 1511년(중종 6) 홍문관 부제학(副提學)에 임명되었다.

1512년(중종 7) 도승지(都承旨)로 영전되었으나, 작은 실수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1514년(중종 9) 서용되어 황해도 관찰사(觀察使)가 되었으며, 1515년(중종 10) 형조 참의(參議)와 대사간을 거쳐서 다시 도승지에 임명되었다.

1516년(중종 11)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외방으로 나갔다.

1517년(중종 12) 한성부 우윤(右尹)을 거쳐서, 이듬해 한성부 좌윤(左尹)이 되었고, 1520년(중종 15) 중추부 동지사(同知事)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묵재집(默齋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종묘의궤(宗廟儀軌)』
  • 『충재집(冲齋集)』
  • 『학포집(學圃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