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한문(盧漢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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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생몰 연대 미상.] 조선 중기 중종~명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예조 참의(參議)⋅이조 좌랑(佐郞)이다. 자(字)는 사욱(士郁)이다. 본관은 광주(光州)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광주목사(廣州牧使)노자장(盧自璋)이고, 어머니 주씨(朱氏)는 주회(朱晦)의 딸이다. 조선 개국(開國) 원종공신(原從功臣) 노숭(盧嵩)의 5대손이고, 사간원 정언(正言)노전(盧㙉)과 공조 좌랑노준(盧埈)의 아버지이다.

중종 시대 활동

1525년(중종 20) 사마시(司馬試) 생원과(生員科)⋅진사과(進士科) 양과(兩科)에 합격하였다.[<사마방목>]

1531년(중종 26)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문과방목>]

1535년(중종 30) 사간원 정언(正言)에 임명되었고, 1538년(중종 33) 이조 좌랑(佐郎)이 되어, 권신 김안로(金安老)가 실시한 사관(史官)의 조보(朝報) 작성을 혁파하도록 건의하여, 중종이 윤허하여 시행되었다.

1539년(중종 39) 사헌부 지평(持平)에 임명되었다.

명종 시대 활동

1550년(명종 5) 통례원 우통례(右通禮)가 되어, 교서관 판교(判校)를 겸임하고, 『중종실록(中宗實錄)』을 편찬하는 데 참여하였다.

1551년(명종 6) 통례원 좌통례(左通禮)로 옮겼다.[『명종실록』 6년 1월 18일 9번째기사] 그 뒤에 예조 참의(參議)에 임명되었다.[<문과방목>]

부인과 후손

부인 문화유씨(文化柳氏)는 부사직(副司直)유숙(柳淑)의 딸인데, 슬하에 5남을 두었다. 장남 노전(盧㙉)은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正言)을 지냈고, 차남 노준(盧埈)은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 좌랑(佐郎)과 감사(監司)를 지냈고, 삼남은 노기(盧垍)이고, 사남 노개(盧塏)는 판관(判官)을 지냈고, 오남 노탄(盧坦)은 생원(生員)이다.[<방목>]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간이집(簡易集)』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인재집(忍齋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