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최(慶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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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26년(인조 4)∼1688년(숙종 14) = 63세.] 조선 중기 효종~숙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도승지(都承旨)이다. 자(字)는 낙선(樂善)이고, 호(號)는 신강(新江)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사산감 역(四山監役)경유후(慶有後)이고, 어머니 문화유씨(文化柳氏)는 유희분(柳希奮)의 딸이다.

인조 시대 활동

1646년(인조 24) 사마시(司馬試)에서 진사(進士)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21세였다.[<사마방목>]

효종 시대 활동

1653년(효종 4) 별시(別試)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28세였다.[<문과방목>] 성균관 학정(成均館學正)으로 재직 중, 1656년(효종 7) 문과 중시(重試)에 급제하였다.[<문과방목>]

현종 시대 활동

1660년(현종 1) 사헌부 지평(持平)이 된 뒤 춘추관 기사관(記事官)을 겸직하였다. 이어 사간원 정언(正言)과 호남 경시관(京試官)을 거쳐 장령이 되었다.

1667년(현종 8) 사은 겸 진주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청나라에 다녀온 후, 다시 정언이 되었으며, 이후 사헌부 장령(掌令)과 승지(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숙종 시대 활동

1676년(숙종 2)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다.

1678년(숙종 4) 외방으로 나가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1679년(숙종 5) 도승지(都承旨)로 영전하였고, 1683년(숙종 9) 장례원 판결사(判決事)에 임명되었다.

1688년(숙종 14) 죽었는데, 향년이 63세였다.

후손

부인 신씨(愼氏)는 신현(愼睍)의 딸인데, 슬하에 1남을 두었다. 장남은 승정원 승지를 지낸 경성회(慶聖會)이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경암유고(敬庵遺稿)』
  • 『국조보감(國朝寶鑑)』
  • 『기언(記言)』
  • 『단곡집(丹谷集)』
  • 『동춘당집(同春堂集)』
  • 『둔헌집(遯軒集)』
  • 『백담유집(白潭遺集)』
  • 『석문집(石門集)』
  • 『손암집(損庵集)』
  • 『송자대전(宋子大全)』
  • 『송파집(松坡集)』
  • 『암서집(巖棲集)』
  • 『야당유고(野堂遺稿)』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은대조례(銀臺條例)』
  • 『입재집(立齋集)』
  • 『장육당유집(藏六堂遺集)』
  • 『정재집(定齋集)』
  • 『태을암집(太乙菴集)』
  • 『팔오헌집(八吾軒集)』
  • 『풍서집(豐墅集)』
  • 『호곡집(壺谷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