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전심록(兩賢傳心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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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조의 명으로 이시원(李始源)이 송대의 주희(朱熹)와 조선 숙종 때의 송시열(宋時烈)의 문집 속에서 심법(心法)에 관한 내용을 뽑아 엮은 것이다.

개설

이 책은 1774년(영조 50) 정조가 동궁이었을 때 이시원 등에게 명해 편찬하도록 하였으며, 권두에 정조의 어제(御製) 서문이 있고, 이시원의 ‘봉교서(奉敎書)’가 있다.

주자(朱子)의 글은 권1~4에, 송시열의 글은 권5~8에 실었는데, 주자의 글은 서(書) 17편, 봉사(封事)·주차(奏箚)·의상(議狀)·설(說)·서(序)·부(賦)·시(詩) 9수 순으로 실었다. 송시열의 글은 안방준(安邦俊), 유계(兪棨), 박세채(朴世采), 권상하(權尙夏) 등에게 준 서 4편과 봉사·소차(疏箚)·지문(誌文)·비·서·발(跋) 등을 실었는데, 이 가운데 ‘기축봉사(己丑封事)’와 ‘여박화숙서(與朴和叔書)’는 주자의 ‘무신봉사(戊申封事)’와 ‘여유승상서(與留丞相書)’의 심법을 그대로 전수하였다고 정조는 주장했다. 이 책의 별책 부록으로 편찬자와 간행자를 알 수 없는 『양현전심록(兩賢傳心錄)』 부록(附錄) 2권 1책 필사본이 전해진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정조의 명으로 주자와 송시열의 저작 속에서 심법에 관한 내용을 간추려 엮은 것이다. 1774년(영조 50) 정조가 동궁으로 있을 때 이시원(李始源) 등에게 명하여, 1795년(정조 19)에 간행되었다. 1856년(철종 7)에는 중간본이 나왔다.

책머리에 정조의 어제서문과 이시원의 봉교서가 있는데, 정조는 서문에서 양현(兩賢)의 ‘심법’이 거의 같다고 하고, 송시열 심법의 소재를 밝혔으며, 정도(正道)를 지키고, 사설(邪說)을 막는 데 이 책이 쓸모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권1∼4는 주자의 저작에서, 권5∼8은 송시열의 저작에서 각각 뽑아낸 것을 엮었다. 권1에 서간문 18편, 권2에 봉사(封事) 2편과 정조의 주(註), 권3에 봉사 1편과 주차(奏箚) 7편, 권4에 의장(議狀)·설·서(序)·부·시, 권5에 서(書) 5편, 권6에 봉사 2편, 권7에 소차와 유소 6편, 권8에 지문(誌文)·비·서·발·명·전·부·시가 실려 있다.

서지 사항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단변이고, 반엽광곽은 22.6×17.5cm이다. 10행 20자의 유계, 상하화문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4.1×22.3cm이며,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송시열은 이이(李珥)의 학통을 이어받은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학문이 정대(正大)하고 예학에 밝았으며, 존심명리(存心明理)를 강조하였다. 특히 투철한 의리 사상과 경세론(經世論)은 성도(聖道)의 밝힘과 같다며, 정조는 송시열을 지극히 존숭해, ‘송나라의 주자’라고 일컬었다.

주자는 중국에서 공자와 맹자 이래로 단절된 도통(道統)을 계승하여, 유학 사상을 집대성했을 뿐만 아니라, 신유학(新儒學)인 송학(宋學)을 일으킨 대학자다. 두 사람은 비록 주어진 시대와 상황과 위치가 다르고, 행장(行藏)과 어묵(語默)과 사업(事業)이 틀릴지라도 성현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같은 심법이 있는 바, 이 책 속의 글들은 고금을 통해, 하나로 일관하는 지동(至同)의 심법을 밝히기 위해 정조가 손수 모은 것이다.

정조는 이 양현(兩賢)의 글을 읽어 보면, 심법이 서로 같음을 알 수 있다며, 특히 송시열의 ‘기축봉사’와 ‘여박화숙서’ 등은 주희의 ‘무신봉사’와 ‘여유승상서’ 등에서 심법을 받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양현 심법의 소재를 밝히며, 정도를 지키고, 사설을 막는 데 이 책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서문에 기술하였다.

권1∼4는 주자의 문집 속에서 뽑은 것으로서, 권1에는 주희가 위원리(魏元履)·장식(張栻)·유자징(劉子澄) 등 당시의 학자들과 주고받은 서간문 18개를 실었다. 권2에는 봉사로서 ‘임오응조봉사(壬午應詔封事)’와 ‘무신봉사(戊申封事)’가 들어 있으며, 정조의 간단한 어정주(御定注)가 붙어 있다. 권3에는 ‘기유봉사(己酉封事)’와 주차(奏箚)로서 7개의 주차가 실려 있다. 권4에는 의장(議狀)·설·서(序)·부·시 등이 실려 있다. 권5∼8은 송시열의 문집 속에서 뽑은 것으로서, 권5에는 송시열이 안방준(安邦俊)·유계(兪棨)·박세채(朴世采)·권상하와 주고받은 편지 5편이 실려 있다. 권6에는 ‘기축봉사’와 ‘정유봉사(丁酉封事)’, 권7에는 소차와 유소로서 ‘청이효종대왕묘위세실소(請以孝宗大王廟爲世室疏)’·‘청추상휘호어태묘소(請追上徽號於太廟疏)’·‘논대의잉진윤증사소(論大義仍陳尹拯事疏)’·‘기사유월유소(己巳六月遺疏)’·‘사초구차(辭貂裘箚)’·‘진수당주차(進修堂奏箚)’가 있다. 권8에는 지문(誌文)·비·서(序)·발·명·전·부·시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주자와 송시열의 ‘심법’이 서로 같음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송시열의 ‘기축봉사’와 ‘여박화숙서’ 등은 주희의 ‘무신봉사’와 ‘여유승상서’ 등에서 심법을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양현 심법의 소재를 밝히며, 정도를 지키고, 사설을 막는 데 이 책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 최경훈, 「朝鮮時代 刊行의 朱子 著述과 註釋書의 編纂」, 경북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9.
  • 최근묵, 「양현전심록(兩賢傳心錄)」, 『우암 송시열의 학문과 사상』,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08.
  • 한기범, 「사학(史學)-우암 송시열에 대한 후대인의 추숭과 평가」, 『한국사상과 문화』 제42호, 한국사상문화학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