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후(高成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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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49년(명종 4)∼졸년미상.] 조선 중기 선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안성군수(安城郡守)이다. 자(字)는 여관(汝寬)이고, 호(號)는 죽촌(竹村)이다. 증직은 예조 참의(參議)이다. 본관은 장흥(長興)이고, 거주지는 광주(光州)이다. 아버지는 광주목사(廣州牧使)고경조(高敬祖)이고, 어머니 영광김씨(靈光金氏)는 참군(參軍)김지달(金之達)의 딸이다.

선조 시대 활동

1583년(선조 16) 별시(別試)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35세였다.[<문과방목>]

1591년(선조 24) 감찰로 있을 때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군수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원수(都元帥)권율(權慄)의 막하에 들어가 활동하였으며, 1593년(선조 26) 행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웠다.

1601년(선조 34) 선산현감(善山縣監)이 되었다가, 곧 이어 안성군수(安城郡守)에 임명되었는데, 후에 군공을 인정받아 예조 참의(參議)에 추증되었다.

묘소와 후손

묘소는 광주(光州)의 송학산(松鶴山)에 있고, 명고(明臯) 서영수(徐瀅修)가 지은 묘표(墓表)가 남아있다.

부인 함양박씨(咸陽朴氏)는 만호(萬戶)박성정(朴星精)의 딸인데, 자녀는 2남 1녀를 두었다. 장남 고부옥(高傅沃)은 무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지냈으며, 차남은 고부민(高傅敏)이다. 장녀는 이효립(李孝立)의 처가 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광주읍지(光州邑誌)』
  • 『명고전집(明臯全集)』
  • 『사계전서(沙溪全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