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관(睦聖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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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91년(숙종 17)∼1772년(영조 48) = 82세.] 조선 후기 숙종~영조 때의 문신. 자(字)는 돈시(敦詩)이고, 호(號)는 기계(沂溪)이다. 본관은 사천(泗川)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 좌랑(佐郞)목천현(睦天顯)이고, 어머니 홍씨(洪氏)는 홍만조(洪萬朝)의 딸이다. 좌의정목내선(睦來善)의 증손자이고, 예조 참판목임일(睦林一)의 손자이다.

숙종 시대 활동

1715년(숙종 41) 사마시(司馬試) 생원과(生員科)⋅진사과(進士科) 양과에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25세였다.[<사마방목>]

영조 시대 활동

1728년(영조 4)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의 남인과 소론이 영조의 즉위에 반대하여 일으킨 <무신난(戊申亂)>에 배후 세력으로 숙종 때 남인 정권의 좌의정목내선의 후손들이 지목되어 아버지 목천현(睦天顯)과 숙부 목천임(睦天任) 등과 함께 연루되어 체포당하여 국문(鞫問)을 받았다. 국옥(鞫獄)에서 숙부 목천임과 왕래한 일과 순지(順之)가 체포된 뒤에 두려워하며 숨어 지낸 이유에 대해서 심문하였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다시 형문(刑問)하였으나 끝내 죄를 인정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에 아버지 목천현과 함께 사형은 면하였으나 절도(絶島)에 유배되었다.

1738년(영조 14) 아버지 목천현과 함께 절도에서 풀려나 육지로 이배(移配)되었다가, 1755년(영조 31) 유배에서 풀려났다.

부인과 후손

첫째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이석조(李錫祚)의 딸이고, 둘째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는 한종엽(韓宗燁)의 딸이다. 양자는 목조성(睦祖星)이고, 손자는 목처중(睦處中)과 목필중(睦必中)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사마방목(司馬榜目)』
  • 『성호전집(星湖全集)』
  • 『여와집(餘窩集)』
  • 『옥천집(玉川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