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책(天道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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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558년(명종 13) 이이(李珥)가 별시해(別試解)에 장원하였을 때의 답안(答案)이다.

개설

이 글은 이이가 쓴 과거시험 답안지다. 필자는 이 글에서 이(理)라는 것은 만물의 본질(本質)을 말함이고, 기(氣)라는 것은 만물의 본질이 아닌 보이는 현상(現象)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현실에서의 개혁과 실천을 중시하는 인물로 기를 다스림으로써 본질인 이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파하였는데, 이 글로 미루어 보면 실천철학자가 아닌 수양철학자의 관점에서 지극히 형이상학적으로 논지를 시작하면서도, 본인이 도달하고자 하는 주장, 즉 뜬구름만 잡을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당시 현 세태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글은 이이가 23세 때인 1558년(명종 13) 겨울에 있었던 별시(別試)에서 장원 급제한 글로서, ‘천도책(天道策)’이란 천문, 기상의 순행과 이변 등에 대한 책론이며, 여기서 책(策)이란 과거 시험 문제의 한 종류로 사안을 질문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서술토록 하는 형식을 말한다. 율곡 철학사상의 기틀은 이 때 이미 갖추어졌으며, 주자나 이황이 그 학설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 것과는 달리, 이이는 시종일관하였다.

이때의 ‘천’이란 자연으로서의 푸른 하늘을 넘어서 초월적 우주의 주재요, 자연계의 총체로 인식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의 천의 관념은 매우 다양하여 이미 『시경(詩經)』에서도 인격적인 천의 관념과 형이상학적인 천의 관념이 모두 나타나는데, 전자를 천명(天命)·천의(天意)라 한다면, 후자는 바로 천도(天道)·천리(天理)라 할 수 있다. 천도라는 말은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 대체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자연의 법칙이라는 의미로서 『주역(周易)』에, “하늘의 도(道)를 세워 음(陰)·양(陽)이라 한다.”라고 할 때의 천도이다. 즉, 음양의 두 형식이 오고 가며, 성장·소멸하여 천도가 운행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도(人道)의 본원으로서, 성(誠)의 천도를 말한다. 『중용(中庸)』에서 “성실한 것은 천도요, 성실하게 하는 것은 인도이다.”라고 한 것이다.

셋째는 천지(天地)를 주재하는 존재라는 뜻으로, 『노자(老子)』에서 “천도는 편애함이 없으며, 늘 착한 사람과 더불어 한다.”고 한 말에 잘 나타난다.

천도에 대한 관념이 유학의 일부분이 된 것은 대략 진(秦)·한(漢) 사이에서 시작되어 한대에 이르러서 크게 성행하였고, 그 영향이 곧바로 송대 유학에까지 통한다. 조선 유학의 흐름은, 천도에 대한 논의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정도전(鄭道傳)은 고려 말 도학자로서 조선 왕조의 건립에 참여해 통치 이념을 도학적 이론으로 공고히 하였던 조선 초 도학의 대표적 인물이다.

조선 중기 성리학의 거장인 이이는 성리학의 이기설(理氣說)에 의해 자연과 인사(人事)를 논의하면서, “하늘은 비와 햇볕과 따사로움과 추위와 바람으로써 만물을 생성하고, 어진 임금은 엄숙과 다스림과 슬기와 계획과 성스러움으로써 위로 천도를 호응한다.”고 하였다. 인도의 조건과 모범으로서 자연현상의 천도를 제시하고 있다.

서지 사항

『율곡전서』 권14의 잡저에 수록되어 있고, 목판본(연세대학교 소장본(1814년 간행)이다. 11행 20자, 상2엽화문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21.7×16.3㎝이며,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내용에서 먼저 “상천(上天)의 일은 무성무취(無聲無臭)하여, 그 이(理)는 지극히 은미하고, 그 상(象)은 지극히 현저하니, 이 설(說)을 아는 사람이라야 더불어 천도(天道)를 논할 수 있다. 이제 집사(執事) 선생께서 지극히 은미하고, 현저한 도(道)로써 발책(發策)하여, 격물(格物)· 궁리(窮理)의 설을 듣고자 하니, 이는 진실로 천인(天人)의 도를 궁구한 자가 아니면, 어찌 이것을 같이 논할 수 있겠는가? 나는 평일에 선각자에게 들은 것을 가지고, 밝은 물음에 만분의 일이나마 답하려고 한다.”며 운을 띠고 있다.

이어서 “기(氣)가 동(動)하면 양(陽)이 되고, 정(靜)하면 음(陰)이 되나,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것은 기요, 동하게 하고 정하게 하는 것은 이(理)이다. 천지의 사이에 형상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오행의 정기가 모여서 된 것도 있고, 천지의 괴기(乖氣)를 받은 것도 있고, 음양이 서로 격동하는 데에서 생긴 것도 있고, 음양 이기(二氣)가 발산하는 데에서 생긴 것도 있다. 그러므로 일월성신(日月星辰)이 하늘에 걸려 있는 것, 비·눈·서리·이슬이 땅에 내리는 것, 바람·구름이 일어나는 것, 우레·번개가 일어나는 것은 기가 아님이 없으며, 하늘에 걸려 있는 까닭, 땅에 내리는 까닭, 풍운(風雲)이 일어나는 까닭, 우뢰와 번개가 일어나는 까닭은 모두 이가 아님이 없다.”고 말하면서, 천지우주의 원리를 이기에서 제시한다.

다음 “이기(二氣)가 진실로 조화되면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이 그 도(度)를 잃지 않고, 땅에 내리는 것이 반드시 시(時)에 맞으며, 풍운뇌전(風雲雷電)이 모두 화기(和氣) 속에 있으니, 이는 이(理)의 상(常)이다. 이기(二氣)가 조화되지 않으면 운행이 도를 잃고, 그 발산함이 시(時)를 잃어 풍운뇌전이 모두 괴기에서 나오니, 이는 이(理)의 변(變)이다.”고 말해 이기의 조화에 대해 설명한다.

끝으로 “그런데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르고 사람의 기가 순(順)하면 천지의 기도 순하다. 그렇다면 이의 상(常)과 이의 변(變)을 어찌 한결같이 천도에 맡길 수 있겠는가? 성왕(成王)이 한번 잘못 생각하매 대풍(大風)이 벼를 쓰러뜨렸고, 주공(周公)이 수년을 교화하매 바다에 파도가 일지 않았으니, 그 기가 그렇도록 시킨 것도 또한 사람의 일(人事)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일기(一氣)의 운행 변화가 흩어져 만수(萬殊)가 되나, 나누어서 이를 말하면, 천지만상이 각각 일기(一氣)이지만, 합하여 이를 말하면, 천지만상이 같은 일기(一氣)이다. 이로써 본다면,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고, 만물이 육성되는 것이 어찌 임금 한 사람의 수덕(修德)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라 하여, 통치자의 태도를 언급하고 있다.

언급된 내용은 이기론에 입각한 우주관이며, 또 천인합일설이다. 물론 이이의 ‘천도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불교와 노장 철학을 위시한 제자학(諸子學) 등 여러 종파 및 학파의 사상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이는 유학의 본령(本領)을 들어, 그 기본 정신에 투철했으며, 철학적으로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현실 문제에까지 연결시켰던 것이다.

의의와 평가

이 글은 천문, 기상의 순행과 이변 등에 대한 책론인데, 율곡 철학사상의 기틀은 이 때 이미 갖추어졌으며, 주자나 퇴계가 그 학설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 것과는 달리, 율곡은 시종일관하여, 그의 학문과 인품을 알 수 있는 자료다.

참고문헌

  • 배종호, 『한국유학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8.
  • 안병주, 「율곡의 천도책역해」, 『동방사상논고』, 종로서적, 1983.
  • 유승국, 『한국의 유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 유승국, 「율곡철학의 근본정신」, 『동양철학연구』, 근역서재, 1983.
  • 이병도, 「율곡집해제(栗谷集解題)」, 『국역율곡집』, 민족문화추진회, 1968.
  • 정종부, 「율곡집해제(栗谷集解題)」, 『율곡집(栗谷集)』, 대양서적,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