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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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조가 문신 최항(崔恒, 1409~1474)과 한계희(韓繼禧, 1423~1482)에게 명해 주희(朱熹)의 『역학계몽(易學啟蒙)』을 알기 쉽게 보충 해설한 주석서다

개설

이 책은 주희가 지은 『역학계몽』을 해설한 책이다. 1465년(세조 11)에 세조가 문신 최항과 한계희에게 명하여, 알기 쉽게 보충·편찬한 것이다.

권두에 세조가 쓴 ‘어제역학계몽요해서’와 권말에 최항의 발문이 있다. 권1에 ‘본도서(本圖書)’, 권2에 ‘원괘(原卦)’, 권3에 ‘명시책(明蓍策)’, 권4에 ‘고변점(考變占)’으로 구성되었다. 『주역(周易)』의 난해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여, 대주(大註)·소주(小註)·할주(割註)로 구분하여 표시하였다. 편집·교열에는 김국광(金國光)을 비롯하여 당시의 손꼽히는 학자 10명이 참가하였다. 이것은 『주역』의 교재로도 쓰였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1465년에 간행되었는데, 편집·교열 작업에 참가한 사람으로 김국광·노사신(盧思愼)·구종직(丘從直)·정자영(鄭自英)·정난종(鄭蘭宗)·유희익(兪希益)·어세공(魚世恭)·최자빈(崔自濱)·유신(兪愼) 등 당시의 쟁쟁한 학자들이 모두 망라된 것으로 보아, 이 작업이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어졌는가를 알 수 있다. 권두에 세조가 쓴 ‘어제역학계몽요해서’와 주희의 ‘역학계몽서’가 있고, 권말에 이 책의 편찬과 간행을 주관한 최항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은 송(宋)나라 때 주희가 편찬한 『역학계몽』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석한 역학(易學)의 입문서이다. 세조가 편찬을 명하고, 최항, 한계희 등이 명을 받아 완성하였다. 책의 발문(跋文)에, “『주역』을 배우는 데 있어 『역학계몽』은 학자의 지침이 되기는 하지만, 글의 뜻이 정심(精深)하여, 처음 배우는 사람은 뜻을 알 수가 없다고, 왕께서 분부하시기에 우리들이 교정(校正)하였고, 혹 미진한 부분은 보충 해설하였다.”라고 하여, 책의 저작 경위를 알 수 있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따르면, 세조는 경연에서 『주역』과 『역학계몽』을 강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세조 자신도 『주역』에 대한 이해가 깊었는데, 그가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세조는 경회루에서 여러 신하와 연회를 할 때, 신하 이영은(李永垠)이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자, 『역학계몽』 같은 책은 꼭 읽어야 한다며, 자신의 학식을 뽐내었다고 한다.

세조는 『역경(易經)』이 성인과 현자의 가르침을 갖추고 있어서,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입장은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의 ‘어제서(御製序)’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조의 『역학계몽요해』는 의리역학이 주된 흐름을 차지하고 있던 조선 전기 역학사에 주희의 상수와 의리를 종합한 이론을 소개함으로써 조선 전기 도서역(圖書易)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의가 있다.

서지 사항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이다. 상하쌍변, 좌우단변이고, 반곽은 21.0×15.4cm이다. 무계, 행자수부정(行字數不定), 무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27.0×19.0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역학계몽요해』는 조선 최초의 『역학계몽』 주석서이다. 최항은 한계희와 함께 세조의 명을 받아, 많은 동료 학자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역학계몽』에 대한 문답형식의 『역학계몽요해』를 간행하였다.

고려 말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정이의 『역전(易傳)』을 수용하였고, 이런 경향은 조선 초기에 이어졌다. 조선 초기의 유학자들은 정이의 유가적인 도덕적 원리와 의리역학적 해석방법론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역학 이론을 성립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세조의 『역학계몽요해』는 상수를 토대로 의리를 종합하는 주희의 역철학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역학계몽요해』는 의리역학이 주된 흐름을 차지하고 있던, 조선 전기 역학사에 주희의 상수와 의리를 종합한 이론을 소개함으로써 조선 전기 도서역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의가 있다.

하지만 『역학계몽』을 통한 주자학적 또는 성리학적 세계관의 정립은 『역학계몽요해』에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큰 요인은 세조 전 기간 동안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아직 미성숙했고, 불교가 유학보다 더 우대받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학계몽요해』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관점에서 『역학계몽』을 이해하기보다는 기존의 중국학자들의 주석에 의존하는 한계를 보인다.

이 책의 권1은 본도서(本圖書) 5편, 권2는 원괘(原卦) 15편, 권3은 명시책(明蓍策) 7편, 권4는 고변점(考變占) 5편으로 되어 있고, 부도(附圖)로 ‘옥재호씨통석부도(玉齋胡氏通釋附圖)·복희칙하도이작역도(伏羲則河圖以作易圖)·대우칙낙서이작범도(大禹則洛書以作範圖)·선천팔괘합낙서수도(先天八卦合洛書數圖)·후천팔괘합하도수도(後天八卦合河圖數圖)·복희육십사괘방도(伏羲六十四卦方圖)·소자천지사상도(邵子天地四象圖)·주자천지사상도(朱子天地四象圖)·괘륵과설발도(卦扐過揲跋圖) 등이 있고 또 서의(筮儀)가 부록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해설 절차는 원문에 이어서, 한 자 낮추어, 대주(大註)를 쓰고, 또 한 자 낮추어, 소주(小註)를 썼으며, 끝에 보해(補解)를 할주(割註)로 표시하였다. 보해한 곳은 모두 12개소로 몇 가지를 소개하면, 서문의 끝에 ‘운대진일(雲臺眞逸)은 쓰다.’에서 ‘운대진일’은 주희 자신을 칭하는 말로 주희가 태주(台州)의 숭도관(崇道觀)을 주관하다가, 뒤에 화주(華州)의 운대관(雲臺觀)으로 옮겼기 때문에 그렇게 표기한 것이라 하였다.

‘생수(生數)’를 설명하면서, 2는 화의 생수이고, 4는 금의 생수이며, 7은 화의 성수이고, 9는 금의 성수이나, 2와 4는 음수이고 7과 9는 양수이므로, 생수라고 한다고 하였다. 또한 ‘태양지위수(太陽之位數)’에서 태양의 위는 1이며, 태양의 수는 6이며, 태음의 위는 4요, 태음의 수는 9라는 등 『주역』의 ‘오행’과 ‘수리’, ‘영상·괘효’ 등 난해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역』 교재로 쓴 것이다. ‘서의’는 시귀점(蓍龜占)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초보자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의리역학이 주된 흐름을 차지하고 있던 조선 전기 역학사에 주희의 상수와 의리를 종합한 이론을 소개함으로써 조선 전기 도서역(圖書易)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 강제훈, 「세조, 비범한 임금? 평범한 임금!」, 『내일을 여는 역사』 제25호, 서해문집, 2006.
  • 김현숙, 「朝鮮 世祖朝의 印刷文化에 대하여」,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0.
  • 양순자,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의 도서역학적 의의」, 『동양철학』 제40호, 동양철학회, 2013.
  • 엄연석, 『조선전기역철학사』, 학자원,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