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지경(睦趾敬)
| 주요 정보 | |
|---|---|
| 대표표제 | 목지경 |
| 한글표제 | 목지경 |
| 한자표제 | 睦趾敬 |
| 분야 | 인물 |
| 유형 | 문신 |
| 지역 | 한국 |
| 시대 | 조선 |
| 왕대 | 숙종~영조 |
| 집필자 | 최양규 |
| 자 | 우린(于麟) |
| 출신 | 양반 |
| 성별 | 남자 |
| 출생 | 1683년(숙종 9) |
| 사망 | 1731년(영조 7) |
| 본관 | 사천(泗川) |
| 주거지 | 서울[京] |
| 증조부 | 목시윤(睦時尹); 생원(生員) |
| 조부 | 목임언(睦林彦) |
| 부 | (양부) 목천정(睦天貞) (생부) 목천원(睦天元) |
| 모_외조 | (양모) 안동권씨(安東權氏); 권혁(權𠋈)의 딸 (생모)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 남궁옥(南宮鈺)의 딸 |
| 형제 | (본생가 형) 목기경(睦起敬), 목적경(睦蹟敬) (본생가 동생) 목존경(睦存敬) |
| 처_장인 | 해평윤씨(海平尹氏); 윤인손(尹麟孫)의 딸 |
| 자녀 | (1자) 목조덕(睦祖德) |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 목지경(睦趾敬) | |
총론
[1683년(숙종 9)∼1731년(영조 7) = 49세.] 조선 후기 숙종~영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병조 좌랑(佐郞)이다. 자(字)는 우린(于麟)이다. 본관은 사천(泗川)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양부는 목천정(睦天貞)이고, 양모 안동권씨(安東權氏)는 권혁(權𠋈)의 딸이다. 생부는 목천원(睦天元)이고, 생모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는 남궁옥(南宮鈺)의 딸이다. 남인 집안 출신으로 <무신난(戊申亂)>의 배후로 지목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숙종 때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에게 사약(死藥)을 내린 남인 정권의 실세인 좌의정목내선(睦來善)과 도승지(都承旨)목창명(睦昌明)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숙종 시대 활동
1710년(숙종 36) 사마시(司馬試) 진사과(進士科)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28세였다.[<사마방목>]
1717년(숙종 43) 식년(式年)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35세였다.[<문과방목>] 참하관(參下官)의 여러 관직을 거쳐서, 관직이 병조 좌랑(佐郎)에 이르렀다.
영조 시대 활동
1728년(영조 4) 3남 지방의 남인과 소론이 영조의 즉위에 반대하여 일으킨 <무신난>에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어 숙종 때 남인 정권의 좌의정목내선의 손자 목천임(睦天任) 등과 함께 연루되어 체포되어 국문(鞫問)을 받았다. 국옥(鞫獄)에서 목천임 집안의 종 노미(老味)와 수택(守澤) 등이 원곡(院谷)에서 열린 변란자의 모의에 그들이 참여하였다고 무고하였기 때문에 목천임은 형장(刑杖)을 맞다가 죽었으며, 목지경은 1731년(영조 7)에 죽음을 당하였는데, 향년이 49세였다. 그 뒤에 7년이 지나서 1738년(영조 14) 신원(伸冤)되고 복관(復官)되었는데, 당시 승지였던 엄경하(嚴慶遐)가 원곡에서 변란자의 모의가 열린 그날 자기 형님인 엄경우(嚴慶遇)의 수연(壽宴)에 목지경이 참석하였다고 증언함으로써 목지경의 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부인과 후손
부인 해평윤씨(海平尹氏)는 윤인손(尹麟孫)의 딸이다. 아들은 목조덕(睦祖德)이고, 손자 목안중(睦安中)은 진사(進士)로서 중추부 첨사(僉事)를 지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영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