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문당(崇文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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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명정전 뒤편에 위치하는 편전형 건물.

개설

숭문당이라는 이름은 ‘학문을 숭상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 궁궐에서 왕이 경서를 논하는 건물의 이름으로 즐겨 사용하였다. 현재 숭문당으로 알려진 건물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明政殿)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 누각의 형태로 장주초를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창덕궁에 숭문당이 있고 창경궁에도 숭문당이 있어 혼돈을 일으키기도 한다. 창경궁의 숭문당은 1616년(광해군 8)에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창경궁을 재건하면서 창덕궁희정당(熙政堂)의 영향을 받아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왕이 학문을 하는 곳으로 사용되었으며, 신하들을 만나는 곳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 창경궁의 문정전(文政殿)이 혼전으로 사용되면서 가까이 위치한 숭문당도 혼전과 연관된 기능을 하게 되었다.

위치 및 용도

숭문당이라는 이름을 갖는 건물은 두 곳이었다. 첫째는 창덕궁의 숭문당이다. 원래 이름은 수문당(修文堂)이었으며 왕이 학문을 하는 건물로 사용되었다. 학문을 닦는다는 의미와 학문을 숭상한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혼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496년(연산군 2)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어 현재는 희정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연산군이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꿨으나, 당시 승지(承旨)가 ‘숭문’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로 볼 때 이름을 고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희정당이라는 편액을 썼으니, 숭문당이라는 글자도 함께 쓰자고 하여 두 개의 편액을 걸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희정당을 숭문당이라고도 계속 불렀다(『연산군일기』 2년 12월 8일).

두 번째는 창경궁의 숭문당이다. 이는 1616년에 창경궁을 재건하면서 처음 조성되었다. 창덕궁의 희정당과 유사한 형태로 왕의 학문과 정치의 장소로 건립하였다. 창덕궁의 공식적인 편전은 선정전(宣政殿)이지만 희정당에서 경서를 강론하고 신하를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점차 희정당이 편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창경궁에도 공식적으로 편전의 건물은 문정전이지만 좀 더 편리하게 신하를 만나고 강론하는 장소로 숭문당을 사용하였다.

숭문당은 상장례 공간으로도 사용되었다. 1528년(중종 23) 이후 계속해서 문정전은 혼전으로 사용되었고, 그 일대는 상장례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1650년(효종 1)에 장렬왕후(莊烈王后)가 인조의 혼전에 망곡례를 행하고자 하는 의사를 나타냈다(『효종실록』 즉위년 8월 23일). 이전까지는 혼전 의례에 대비 이하 내명부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장렬왕후의 뜻에 따라 혼전과 내전이 연결되는 위치에 있던 숭문당의 마당에서 망곡례를 행하도록 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의 혼전이 문정전에 설치되었을 때에는 내명부가 숭문당에서 곡림(哭臨)하였다. 이후부터 조선후기에는 문정전에 혼전이 마련되면 그 서북쪽에 위치한 숭문당을 곡림청으로 사용하였다.

1671년(현종 12)에 숙경공주(淑敬公主)가 죽자,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숭문당에서 거애(擧哀)하였다(『현종실록』 12년 1월 9일). 1701년(숙종 27)에 인현왕후(仁顯王后)가 죽자 명릉(明陵)에 장사 지내고, 능에 따라가지 못한 숙종은 창경궁의 숭문당에서 망곡례를 행했다(『숙종실록』 27년 12월 9일).

변천 및 현황

창경궁의 숭문당은 1616년에 처음 조성되었다. 1830년(순조 30) 환경전(歡慶殿)에서 시작된 화재로 인해 함인정(涵仁亭)·공묵합(恭默閤)·경춘전(景春殿)·영춘헌(迎春軒)·오행각(五行閣)·빈양문(賓陽門)과 함께 소실되었다(『순조실록』 30년 8월 1일). 1833년(순조 33)에 재건되었으며, 현재 창경궁에 남아 있다.

형태

건물의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3칸이며 익공집이다. 숭문당의 특징은 건물의 정면부 기단을 뒤로 물리고, 대신 돌기둥을 초석으로 하여 누각 형식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형태의 건물로는 숭문당 외에 창덕궁의 희정당과 경덕궁의 흥정당(興政堂)이 있다. 모두 내전과 가까이 위치하여 편전의 기능을 수행한 건물이며, 숭문당과 흥정당은 광해군대에 조성된 것이다.

참고문헌

  • 김동욱, 「조선시대 창덕궁 희정당의 편전 전용에 대하여」, 『건축역사연구』제3권 제1호,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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