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통(樂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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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의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1791년(정조 15)에 편찬한 음악이론서다.

개설

이 책은 중국 청(淸)나라의 『율려정의(律呂正義)』의 『신법율수(新法律數)』를 근본으로 삼고, 명(明)나라의 주재육(朱載堉)이 편찬한 『율려정의』를 참고하여 엮은 음악이론서이다. 이 책의 체제는 악률(樂律)·악조(樂調)·악기(樂器)·악보(樂譜)·악현(樂懸)·악무(樂舞)의 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791년 주자(朱子)의 음악을 활용하고, 우리나라의 음악을 고제(古制)로 복귀시키기 위해 고금(古今)의 서적과 악기를 참조하여, 편찬한 이론서가 이 책이다.

『악통(樂通)』을 비롯한 『속오례의(續五禮儀)』·『증보동국문헌비고(增補東國文獻備考)』·『국조보감(國朝寶鑑)』·『대전통편(大典通編)』 등 정조의 저작물은 뒷날 184권 100책의 『홍재전서(弘齋全書)』로 간행되었다.

『악통』에서 정조는 주재육의 설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시악화성(詩樂和聲)』에서 주재육의 신법밀율(新法密律), 즉 평균율(平均率)을 적극 수용하거나, 12율관의 위경(圍徑)이 모두 다르다는 주장에도 동의했던 서명응(徐命膺)의 악률론과는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편찬/발간 경위

소리[聲]는 악기[器]를 통해서 나고, 악기는 정확한 수치[數]에 의거해 만들어진다. 즉 황종관(黃鍾管)의 경위(徑圍: 지름과 둘레), 멱적(羃積), 길이가 참된 수치를 얻으면, 이를 근거로 율려(律呂)를 손익(損益)하여 궁조(宮調)를 어울리게 하니, 이를 팔음(八音)에 옮겨 악기를 만들었다.

삼고(三古)의 성(聲)에는 5성(聲)이 있고, 12율(律)이 돌아가며 궁이 되었을 뿐이나, 후세에 2변(變)과 4청성(淸聲)을 부연하였고, 60조를 만들었다. 삼고(三古)의 악기는 한 악기에서 오직 한 음(音)만 냈으나, 후세에는 한 악기에 여러 음을 구비하였다. 그리하여 관음(管音)은 율려(律呂)로 조절되어, 공척(工尺)이 음양 조화의 중심이 되고, 현음(絃音)은 궁(宮)· 치(徵)로 조정되어, 정성(正聲)과 변성(變聲)에 전음(全音)과 반음(半音) 및 산성(散聲)과 실음(實音)의 분(分)이 있게 되었다.

또한 근세의 강보(腔譜)와 도수(度數)가 더욱 정밀하게 된 것은 바로 손으로 움켜 마시던 것에서 와준(汙尊)이 되고, 와준에서 운뢰(雲罍)로 된 것과 같다. 악기에 옛 것과 지금 것이 있어 소리 또한 이에 따라 다르므로, 금악(今樂)을 버리고 고악(古樂)을 논한다면 옛것에 구애되어 틀림없이 옛 것을 회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명나라 음악은 송의 대성악(大晟樂)을 이어 쓴 것이어서, 황종관의 경위(徑圍)와 멱적(羃積)의 수(數)가 실은 근원을 탐구한 것이 아니다. 오직 홍무(洪武) 연간의 냉겸(冷謙)과 만력(萬歷) 연간의 주재육만이 율수(律數: 악리(樂理))를 깨달았다고 이를 만하나, 또한 공허한 말에 의탁했고, 임금의 명령으로 역사에 기록됐을 따름이다.

이후 학사(學士)들 중에 고찰하는 이가 적고, 악공(樂工)과 악사(樂師)들이 곡보(曲譜)에 어두워, 오늘날의 종(鐘)·경(磬)·관(管)·소(簫)가 명나라 제도에서 나왔으니, 바로 여기에 아정한 음악이 있다고 생각하고, 명나라 음악이 위한진(魏漢津)이 만든 것이어서, 고악(古樂)이 아닌 줄을 알지 못하였다. 세종이 명나라 제도를 따른 것은 ‘천자가 아니면 논의하지 않는다.’는 의리 때문이었지, 명나라 음악을 아정한 음악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에 『율려정의』의 『신법율수』를 근본으로 삼고, 『율려정의』의 여러 편을 참조하여, 성기(聲器)를 두루 설명하고, 성법(成法)을 서술하여, 『악통』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요지는 금악(今樂)으로 말미암아 고악(古樂)을 돌이켜 활용하고자 함이다. 첫째는 악률(樂律), 둘째는 악조(樂調), 셋째는 악기(樂器), 넷째는 악보(樂譜), 다섯째는 악현(樂縣), 여섯째는 악무(樂舞)로 모두 6편이다.

서지 사항

1책(3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이다. 사주단변이고, 반곽은 21.2×16.1cm이다. 10행 20자의 유계, 상하향백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26.0×18.9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율려정의』와 『신법율수』를 바탕으로 여러 악서(樂書)를 참고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리고 정조대 마지막 어정 음악이론서이다. 1780년(정조 4)에 서명응이 지은 『시악화성(詩樂和聲)』의 악률론은 명나라의 주재육 이론인 횡서척 1척을 황종율관의 길이로 삼고, 횡서척의 10분의 9인 9촌을 황종율관의 길이로 삼은 점이 비교된다. 이 책은 정조대를 기점으로 한 악률관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책에는 악률·악조·악기·악보·악현·악무 등 6편으로 나누어, 구성·기록하고 있으므로, 당시 아악(雅樂) 부흥을 위한 중국이론의 도입과 궁중음악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제1편 악률은 황종율관의 척도는 기장알의 숫자를 통해 산출하였다. 제2편 악조는 삼분손익과 격팔상생을 통해 율을 얻는 방법이다. 횡서척의 10분의 9인 9촌을 황종율관의 길이로 삼은 후 삼분손익법을 통해, 12율을 얻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제3편 악기에서는 사(絲)와 죽(竹)이 중심 악기로 보았다.

죽성(竹聲)과 사성(絲聲)은 허(虛)의 대소와 사(絲)의 다소에 따라 다르며, 크고 작은 수는 공통적으로 장단에서 비롯된다고 언급하였다. 제4편 악보에서 심수보법(尋數譜法)보다 감자보법(減字譜法)을 중요하게 보았다. 즉 청탁이 어울리고, 궁조가 서로 도는 것은 보법에 매달려 연주하는 결과가 아니라고 보았다. 제5편 악현에서 종묘제향에서 당악과 향악이 쓰는데, 한결같지 않으므로 속부 헌헌이 실록에 전하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제6편 악무에서 성인이 종(鐘)·경(磬)·관(管)·생(笙)의 소리를 빌려, 성정을 문채가 나게 하고, 힘차게 움직이고 공손하게 읍하여 공덕을 표현할 수 있으므로, 음악과 더불어 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당시 아악 부흥을 위한 중국이론의 도입과 궁중음악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문헌이다.

참고문헌

  • 곽석자, 「國樂資料의 著述과 刊行에 관한 書誌的 硏究」, 청주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2.
  • 김수현, 『朝鮮時代 樂律論과 詩樂和聲』, 민속원, 2012.
  •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민속원, 2007.
  • 송지원, 「正祖의 樂書 편찬과 그 의미」, 『한국음악사학보』 제29집, 한국음악사학회, 2002.
  • 이선수, 「악통(樂通)에 구현된 정조의 악론(樂論)」, 『동양예학』 제21호, 동양예학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