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어첩(國朝御牒)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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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국조어첩 |
한글표제 | 국조어첩 |
한자표제 | 國朝御牒 |
분야 | 족보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고종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종정원 |
간행처 | |
간행년일 | 1907 |
권책수 | 1책 |
사용활자 | 필사본 |
표제 | 국조어첩(國朝御牒) |
소장처 | 규장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국조어첩(國朝御牒) |
이 책은 종정원(宗正院)에서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始祖)인 신라 사공(司空)이한(李翰)으로부터 고종 황제까지 기록한 대한제국 황실의 보첩이다.
개설
이 책의 본문 앞머리의 서명은 ‘국조보첩(國朝譜牒)’이다. 이 책은 전반부에 전주이씨의 세계(世系)와 역대 왕, 추존 왕들의 중요 기사를 약술하였고, 후반부에 왕들의 4조도표[열성팔고조도(列聖八高祖圖)]를 실었다. 세계는 시조 이한에서부터 17세 이양무(李陽茂)까지는 휘(諱)와 관직, 부인 성씨와 그들의 아버지 이름, 관직만 기록하였다.
18세 추존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에서부터 순조까지는 왕과 왕비의 휘·시호·휘호(徽號)·생몰·책봉·즉위년월일·중요기사·가족관계(왕자·공주 등 직계 비속만 수록)를 표기하였다. 왕과 선대의 이름 위에는 빨간 딱지를 붙여 가려놓았다.
후반부의 4조도표는 모두 47장(이본은 50장)으로, 왕·추존왕들의 부계 및 모계(모모계 포함), 고조 이하 4조의 계통을 밝힌 것이다. 철종·고종 등 입후한 왕들은 사친(私親: 생부모)의 도표도 수록하였다. 내용이 간략하여 자료적 가치는 적으나, 조선왕조의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는 점이 특색으로 지적된다.
편찬/발간 경위
표지 서명은 ‘국조어첩(國朝御牒)’이고, 권수제와 서근제는 ‘국조보첩(國朝譜牒)’이다. 앞표지에 주색 비단을 테두리로 두른 민무늬 비단 제첨에 서명이 필사되어 있으며, 자색(紫色) 비단을 책의(冊衣)로 사용하였다. 황태자비(후일의 순명효황후) 여흥민씨가 1904년(광무 8) 9월 28일 경운궁 강태실(康泰室)에서 승하하고, 11월 29일에 유강원(裕康園)에 장사 지낸 사실까지 기록하고 있고, 고종을 ‘금상(今上)’으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이 책이 필사된 시기는 대략 1904년 9월 이후부터 1907년까지임을 알 수 있다.
서지 사항
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곽(半郭)은 40.1×22.9cm이다. 12행 31자의 유계(有界), 오사난실투식판(烏絲欄套式板), 반엽(半葉), 주쌍행(註雙行), 상하내향삼엽화문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를 갖추고 있고,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크게 선계(先系)와 세계, 열성팔고조도(列聖八高祖圖)로 구분된다. 전체적으로 1897년(고종 34, 광무 1)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한 이후 황제국에 걸맞도록 선조에 대한 추증 작업과 태조·고종의 4조에 해당하는 왕에 한하여 황제로 추존한 사실 등을 기록하였다. 선계의 경우, 1864년(고종 1)에 작성된 『국조보첩』에 비해 많은 보완이 이루어졌다. 먼저 선계의 수록 대상은 시조에서부터 17세 장군(將軍)양무(陽茂), 목조(穆祖)의 부(父))까지이다. 시조의 경우는 1899년(광무 3) 4월 8일 전주 건지산에 위치한 묘소 앞에 단을 설치하고, 조경단(肇慶壇)이라 하였으며, 표석의 음기를 고종이 직접 짓고 썼다는 기록이 추가되었다.
같은 해 삼척에 위치한 17세 장군양무의 묘소를 준경(濬慶)이라 하고, 비 이씨의 묘소를 영경(永慶)이라 추봉(追封)하고, 표석을 세웠음을 기록하였다. 대한제국 이전의 『국조보첩』이 선조의 휘와 관직명만을 주로 기록하였던 데 비해서, 배우자의 본관, 부의 관직과 이름 등이 추기된 것을 통해 대한제국 황실의 선조 선양 사업의 일환으로 보첩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세계의 수록 대상은 18세 목조로부터 작성 당시의 황태자 전하(후일의 순종)까지이다. 각 왕별로 왕과 비, 왕의 자녀 순으로 기록하였다. 왕의 경우, 휘, 자, 존호, 생년일시와 탄생 장소, 왕세자 책봉일, 즉위일, 승하 일시와 승하 장소, 재위년, 추존 시기, 춘추, 시호, 총 자녀 수, 능호 등이 기재되어 있다. 왕비의 경우, 존호, 본관, 부의 관직과 이름, 생년과 책봉일, 승하 일시와 승하 장소, 춘추, 시호, 소생 자녀수, 능호 등을 기록하였다. 왕자녀의 경우, 왕위 계승자를 먼저 적고, 그 다음으로 적서(嫡庶)를 구분한 후에 선남후녀(先男後女) 방식으로 작성하였다. 대군, 공주, 군, 옹주의 순으로 출생 순서를 따라 기록하였으며, 반드시 생모의 신분을 밝혔다. 대군과 군의 경우, 출생 순서 밑에 이름과 봉작명을 적었다. 공주와 옹주의 경우, 출생 순서와 봉작명 이외에 부마의 성명과 부마의 위호(尉號)를 기록했다. 기록한 내용이 불확실한 경우에는 따로 세주(細主)를 달아 ‘신근안(臣謹按)’이라 하며 전거(典據)를 밝혀 논증했다.
이 책의 ‘열성팔고조도’는 태조 고황제부터 황제폐하(후일의 고종태황제)까지 역대 왕 29명의 내외 팔고조도가 존재한다. 특히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이후에 작성된 열성 팔고조의 경우, 태조 고황제, 장조 의황제, 정조 선황제, 순조 숙황제, 문조 익황제 등이 황제로 추존되어, 새로이 작성되었다. 장서각 소장의 동일 서명 『국조어첩』도 대한제국기에 작성된 보첩 가운데 하나이지만, 1907년(융희 1)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직후에 작성된 것이다.
의의와 평가
내용이 간략하여 자료적 가치는 적으나, 조선왕조의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는 점이 특색이다.
참고문헌
- 김영심, 「왕실의 족보」, 『규장각 소장 왕실자료 해제·해설집』 1,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 김일환·원창애·홍우의, 『장서각 소장 왕실보첩류 목록 및 해제』, 민속원, 2010.
- 송순옥, 「기록문화의 꽃, 조선왕조 의궤」, 국가기록원, 2010.
- 이성미, 「[서평] 의궤로 보는 조선시대의 기록문화-한영우, 『조선왕조 의궤-국가의례와 그 기록』(일지사, 2005.7)」, 『역사학보』 제188호, 역사학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