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록(己丑錄)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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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기축록 |
한글표제 | 기축록 |
한자표제 | 己丑錄 |
분야 | 기록서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인조(?)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이수광 등 |
간행처 | |
간행년일 | 미상 |
권책수 | 2권 1책(81장) |
사용활자 | 필사본 |
표제 | 기축록(己丑錄)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기축록(己丑錄) |
이 책은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발생한 기축옥사(己丑獄事)에서부터 1625년(인조 3) 이 옥사가 일단락될 때까지의 기록 및 문서를 편집한 기록서다.
개설
이 책은 1589년(선조 22) 10월 황해감사한준(韓準) 등의 밀계로 시작된 ‘기축옥사’로부터 1594년(선조 27) 11월 서인의 영수 정철(鄭澈)이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파직되기까지의 전말을 적은 이수광(李晬光)의 일기와 허욱(許頊)의 기록, 정개청(鄭介淸)·최영경(崔永慶)의 제자들이 쓴 기록에서 뽑아, 날짜순으로 엮었다.
이 밖에도 『야언통재(野言通載)』 중에서 앞에 든 기록들과 내용이 맞지 않는 부분을 따로 뽑아 싣고, 옥사에 관련된 사람들의 소문(疏文)·옥중기(獄中記)·전기(傳記)·행장(行狀)·비명(碑銘)·제문(祭文)·유사(遺事)·초사(招辭)·계사(啓事)·신원소(伸寃疏) 등이 수록되었는데, 특히 정개청·최영경·정철에 관한 것이 많다.
편찬/발간 경위
1589년 10월에 정여립이 역모를 꾀하였다 하여, 3년여에 걸쳐 그와 관련된 1,000여명의 동인계(東人系)가 피해를 입은 사건이 기축옥사다. 이 책은 이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기축옥사의 발단은, 1589년 10월 황해도 관찰사한준과 재령군수박충간(朴忠侃), 안악군수이축(李軸), 신천군수한응인(韓應寅) 등이 전 홍문관 수찬이었던 전주사람 정여립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들의 고변에서 열거된 정여립의 역모죄상은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전주와 진안·금구 등지를 내왕하면서 무뢰배와 공·사 노비들을 모아 ‘대동계(大同契)’라는 단체를 만들어, 매월 활쏘기를 익혔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민간에 유포되어 있던 도참설을 이용해 민심을 현혹시킨 뒤에 기축년 말에 서울에 쳐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그 책임 부서까지 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이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선전관과 의금부 도사를 황해도와 전라도에 파견하여, 사실을 확인하도록 하였다. 정여립은 안악에 사는 변숭복(邊崇福)에게서 그의 제자였던 안악교생 조구(趙球)가 자복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아들 정옥남(鄭玉男)과 함께 도망하여, 진안에 숨어 있다가 자결하였다.
그리고 정옥남은 잡혀 문초를 받은 끝에 길삼봉(吉三峯)이 모의 주모자이고, 해서사람 김세겸(金世謙)·박연령(朴延齡)·이기(李箕)·이광수(李光秀)·변숭복 등이 공모했다고 자백하였다. 그 결과 다시 이들이 잡혀가서 일부는 조구와 같은 내용을 자백하고, 일부는 불복하다가 장살 당하였다. 정여립의 자결과 일부 연루자의 자백에 의해 그가 역모를 꾀했다는 것은 사실로 단정되었다.
이 사건으로 동인에 대한 박해가 더욱 심해지고, 서인인 정철(鄭澈)이 옥사를 엄하게 다스려서, 이발(李潑)·이길(李洁)·김우옹(金宇顒)·백유양(白惟讓)·정언신(鄭彦信)·홍종록(洪宗祿)·정언지(鄭彦智)·정창연(鄭昌衍) 등 당시 동인의 지도자급 인물들이 연루되어, 처형 또는 유배당하였다. 그 가운데 이발은 정여립의 집에서 자신이 보낸 편지가 발견되어, 다시 불려가 고문을 받다가 죽었으며, 그의 형제·노모·자식까지도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호남 유생 정암수(丁巖壽)를 비롯한 50여 인의 상소로 이산해(李山海)·나사침(羅士忱)·나덕명(羅德明)·나덕준(羅德峻)·정인홍(鄭仁弘)·한효순(韓孝純)·정개청(鄭介淸)·유종지(柳宗智)·김우굉(金宇宏)·윤의중(尹毅中)·김응남(金應男)·유성룡(柳成龍)·유몽정(柳夢井)·조대중(曺大中)·우성전(禹性傳)·남언경(南彦經) 등 30여 인이 연루되어 처형되거나 혹은 유배되었다.
이때의 상소로 조정의 동인계 고관과 함께 호남 지방 사류가 다수 연좌되었다. 그리하여 그 뒤부터 전라도는 반역향으로 불리게 되었고, 호남 지역 사류간 반목과 대립이 후대에까지 이어져, 여러 가지 문제를 낳게 되었다. 또 진주에 거주하던 처사 최영경(崔永慶)은 모주인 길삼봉으로 지목되어 옥사하였는데, 그의 연좌 또한 지극히 모호한 내용이어서, 많은 말썽을 불러일으켰다.
서지 사항
2권 1책(81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이다. 크기는 24.2×17.2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상권은 먼저 『기축록』의 전말을 이수광·허욱 및 최영경·정개청의 문인들의 기록을 참고해 기록하였다. 이어서 1590년 강견(姜涀)의 상소문, 최영경의 옥중시기록(獄中時記錄)과 그의 전· 행장·비문 및 이가소승(李家小乘), 백유양(白惟讓)의 유사(遺事), 백진민(白振民)의 『옥중자명소(獄中自明疏)』, 유몽정(柳夢井)에 관한 『비망기(備忘記)』와 그의 아들 유호(柳滸)의 ‘상소문’ 등을 수록하였다.
하권에는 정개청의 행장과 허목이 지은 『곤재전(困齋傳)』 및 『우득록(愚得錄)』의 서문을 전재하였다. 이어서 정개청의 저술인 『동한절의진송청담설서(東漢節義晉宋淸談說序)』 및 정개청의 초초(初招)·재초(再招)·옥중 상소문과 정암수(丁巖壽) 등 사류의 상소문, 나덕윤(羅德潤)·배명(裵蓂) 등의 상소, 유성룡(柳成龍)의 계사 등 정개청이 사건에 연루되는 전말과 그의 신원을 청한 상소문 10여 종 등을 수록하였다.
상권에는 대체로 최영경에 관한 내용이 많고, 하권은 정개청에 관한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동인의 입장에서 편집한 책으로 여겨지지만, 정철·성혼(成渾) 등 서인에 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기축옥사와 그 뒤 동인과 서인의 세력 소장에 따르는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 김동수, 「16·17세기 호남사림의 존재형태에 대한 일고찰」, 『역사학연구』 Ⅶ, 호남사학회, 1977.
- 김용덕, 「붕당정치론 비판-조선시대 당쟁의 성격-」, 『정신문화연구』 제26집, 정신문화연구원, 1986.
- 유일지, 「선조조 기축옥사에 대한 고찰」, 『청구대학론문집」 제2집, 청구대학, 1959.
- 이희권, 「정여립 모반사건의 고찰」, 『창작과 비평』 가을호, 창작과 비평사,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