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륜차(大輪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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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에 낙방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시험.

개설

초시 낙방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치러 성적이 우수한 사람에게 복시에 응시할 자격을 준 시험이었다. 낙방자 중에 혹시 인재를 빠뜨리는 일이 있을까 해서 시행한 제도였다. 생원진사시·문과에서뿐 아니라 절일제에서도 실시되었다. 절일제 대륜차는 직부전시의 기회를 주어 문과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다양한 통로의 하나로 기능하였다.

내용 및 특징

대륜차는 생원진사시 초시 합격자 발표를 한 뒤에 성균관당상관들이 상의하여 낙방한 유생들을 대상으로 시(詩)와 부(賦)를 시험하여 우등한 10명을 예조에 통보하여 생원진사시의 복시에 응시하는 자격을 주었던 제도였다. 1648년(인조 26), 정시(庭試)를 실시한 후에 한동안 거행하지 않던 대륜차를 서울에 머물고 있는 외방의 유생들을 상대로 실시하였다(『인조실록』 26년 8월 8일). 1684년(숙종 10) 시행된 정시에서는 외방에서 올라온 유생들이 수천 명에 이르렀는데 20명을 선발하였다. 이때 낙방해 실망한 유생들을 위열하고자 외방 유생이 흩어지기 전에 성균관에서 대륜차를 실시하게 하였다(『숙종실록』 10년 9월 26일).

대륜차는 문과와 생원진사시 초시를 시행한 후에 낙방자를 상대로 하여 시험을 치러 우수한 사람에게 복시에 나가는 것을 허락한 시험이었다. 생원진사시는 학문 장려책의 성격을 띠고 있는 시험으로 식년시와 증광시 모두 초시와 복시 두 단계로 운영되었다. 문과는 종류가 다양하여 식년시와 증광시는 3단계, 별시는 초시와 전시 2단계, 정시는 1743년(영조 19) 이전에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합격자를 선발하였다가 그 후에는 초시와 전시 2단계로 실시하였다.

문과 전시는 당락을 결정하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대륜차로 전시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는 것은 곧 최종 합격을 의미하였다. 문과 별시 초시 낙방자가 대륜차를 통해서 바로 전시에 나갈 수 있었는지, 1743년 이전의 정시에서 대륜차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하는 점은 실록을 통해서 확인되지 않는다.

정조 연간에 대륜차는 확대되어 대소과뿐 아니라 절일제에도 실시되었다. 절일제에서는 성균관과 사학의 유생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러 우수한 사람에게 직부 회시나 전시의 자격을 주거나 급분(給分)을 하였다. 정조대에 이르면 절일제의 하나인 구일제(九日製)의 대륜차를 통하여 문과에 급제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1784년 정조는 춘당대에서 구일제의 대륜차를 시험치러 표(表)에서는 서울 사람을 뽑고, 부(賦)에서는 지방 사람을 뽑도록 명하였다. 표에서 장원을 한 진사 한흥유(韓興裕)와 부에서 장원을 한 유학 신기현(申驥顯)을 직부전시하게 하였다(『정조실록』 8년 9월 20일). 한흥유는 1780년(정조 4) 식년시 진사시에 합격하고, 1784년 대륜차에서 직부전시되어 문과 정시 병과 9위로 급제하였다. 신기현도 1784년 정시 병과 12위로 급제하였다.

1785년에도 춘당대에서 구일제의 대륜차를 행하고, 표에 장원을 한 서울 사람 윤영희(尹永僖)와 부에 장원을 한 지방 출신 권홍(權泓)에게 직부전시하게 하였다(『정조실록』 9년 9월 9일). 윤영희는 1786년(정조 1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7년(정조 11)에 성균관 비천당(丕闡堂)에서 대륜차를 설행하여 표에서 생원 유사모(柳師模)와 부에서 진사 김한동(金翰東)을 직부전시하게 하였다(『정조실록』 11년 1월 22일). 유사모는 1777년 증광 생원시에 합격하고 대륜차를 통해 1789년(정조 13) 식년시 문과에 합격하였다. 김한동은 1763년(영조 39) 진사가 되고, 1781년(정조 5) 경릉참봉이 되었다가 1787년 대륜차에서 부(賦) 장원하여 1789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대륜차 2년 후에 식년문과 전시에서 급제를 받았다.

1809년(순조 9), 춘당대의 대륜차에서 표(表)의 장원 윤경진(尹景鎭)은 문과에 직부전시하게 하고, 시(詩)와 부(賦)에서는 경외(京外)의 유학 60명을 선발하여 생원진사시 회시에 응시하게 하였다(『순조실록』 9년 10월 4일). 실제로 윤경진은 1804년 식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809년 대륜차로 직부전시되어 그해 증광시 문과 을과에 급제하였다.

절일제의 대륜차를 통하여 직부전시로 문과 식년시와 증광시·정시·별시에 급제할 수 있었다.

변천

생원진사시 초시 불합격자 중 우수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하여 실시한 대륜차는 문과에도 적용되었고 조선후기에는 절일제에도 실시되어 직부전시로 문과에 급제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 조좌호, 『한국 과거제도사 연구』, 범우사, 1996.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people.aks.ac.kr/index.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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