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빈윤씨(和嬪尹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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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65년(영조 41)~1824년(순조 24) = 60세].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正祖)의 후궁. 본관은 남원(南原)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첨지(僉知)를 지낸 윤창윤(尹昌胤)이고, 어머니 벽진 이씨(碧珍李氏)는 이훈보(李薰普)의 딸이다. 생조부는 윤희적(尹熙績)이며, 친조부는 윤희세(尹熙世)이다. 생증조부는 윤천준(尹天駿)이고, 친증조부는 신천군수(信川郡守)를 지낸 윤익준(尹翼駿)이다.

정조의 후궁

윤화빈(尹和嬪)은 1780년(정조 4) 정조의 후궁으로 화빈(和嬪)에 책봉되어 입궐하였으며, 궁호(宮號)는 경수(慶壽)였고 자경전(慈慶殿)에서 가례(嘉禮)를 치뤘다.(『정조실록』4년 3월 10일),(『정조실록』 4년 3월 12일),[『승정원일기』정조 4년 3월 12일] 이듬해인 1781년(정조 5) 임신을 하여 산실청(産室廳)이 마련되었고 옹주를 출산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정조실록』 5년 1월 17일)

1824년(순조 24) 1월 윤화빈이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순조(純祖)는 영조(英祖)의 후궁인 이영빈(李寧嬪)의 예에 따라 상례를 치룰 것을 명하였다.(『순조실록』 24년 1월 14일),[『승정원일기』순조 24년 1월 14일],[『국조보감(國朝寶鑑)』순조조5 24년]

묘소와 후손

윤화빈의 무덤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의령원(懿寧園)(현 중앙여고 자리)에 있었으나 1937년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38-4 서삼릉 경내 후궁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이장 전에는 혼유석(魂遊石), 망주석(望柱石), 문인석, 표석, 제각 등이 갖춰져 있었으나 묘를 이장하면서 혼유석과 표석만 함께 옮겨 왔다. 1970년 서삼릉이 사적 제200호로 지정될 때 함께 지정되었다.

윤화빈은 정조와의 사이에서 1녀를 두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나 별다른 기록이 없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 『국조보감(國朝寶鑑)』
  • 『진신보(搢紳譜)』
  • 지두환, 『정조대왕과 친인척』2, 역사문화,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