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애(韓新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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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801년(순조 1) = ?]. 조선 후기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천주교도로,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아가타. 거주지는 서울이며, 남편은 조시종(趙時鍾)이다.

정조~순조 시대 활동

충청도 보령 양반가의 서녀로 태어난 한신애(韓新愛)는 장성한 뒤 조시종의 후처로 들어가 살았다. 그러다가 1795년(정조 19)~1796(정조 20)년경 한국 초기 천주교회의 첫 여회장인 강완숙(姜完淑)의 전교로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고, 전처의 딸인 조혜의(趙惠義)와 함께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한신애는 이후 강완숙·정복혜(鄭福惠) 등과 함께 교회 일을 도왔으며, 자신의 집 노비들에게도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비록 실패로 돌아갔으나 교리에 밝은 남자 교우들을 집으로 초청하려고도 하였다. 1800년(순조 즉위년) 여름에는 주문모(周文謨) 신부로부터 정식으로 세례를 받았다.[『사학징의』]

1801년(정조 24) 신유박해가 발발하자, 한신애는 정복혜가 모아온 천주교 서적과 성물을 자신의 집에 숨겨두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체포되고 숨겨두었던 서적과 성물도 발각되었다. 이후 그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혹독한 신문을 받았으나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천주교 신앙을 지켰다. 결국 한신애는 사형판결을 받아 그해 5월 22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사망하였다.(『순조실록』 1년 5월 22일),[『사학징의』]

한편 한신애는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복자로 시복되었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사학징의(邪學懲義)』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12, 2006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하느님의 종 125위 약전』,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