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혜옹주(永惠翁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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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858년(철종 9)~1872년(고종 9) = 15세]. 조선의 제 25대 임금인 철종(哲宗)의 딸로 옹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1866년(고종 3) 신정왕후(神貞王后)에 의해 숙의(淑儀)에 봉해진 범숙의(范淑儀)이다. 부마는 반남 박씨(潘南朴氏)금릉위(錦陵尉)박영효(朴泳孝)이다.

출생과 사망

1858년(철종 9) 영혜옹주(永惠翁主)는 철종과 범숙의의 1녀로 태어났다. 1866년(고종 3) 9살 되던 해에 어머니 궁인 범씨는 숙의로 봉해졌고, 옹주는 영숙옹주(永淑翁主)로 봉해졌다가 영혜로 바꾸어 봉작되었다.(『고종실록』 3년 2월 13일),(『고종실록』 3년 2월 13일)

1871년(고종 8) 고종은 영혜옹주의 부마를 간택하기 위해 12세부터 14세까지의 남자의 혼인을 금지하였고, 사조(四祖)에 현관(顯官)이 없는 사람과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을 제외한 명단을 바치라고 하였다.(『고종실록』 8년 12월 22일) 한 달 후 영혜옹주의 부마 간택을 행해진 결과 박원양(朴元陽)의 아들 박영효(朴泳孝)가 간택되었다.(『고종실록』 9년 1월 26일),(『고종실록』 9년 2월 22일) 이어 박영효는 금릉위에 봉해졌다으며, 두 달 후 영혜옹주는 박영효의 혼인이 이루어졌다.(『고종실록』 9년 2월 22일),(『고종실록』 9년 4월 13일)

그러나 영혜옹주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종실록』 9년 7월 4일) 후에 고종은 박영효에게 집 한 채를 내리고 정1품 종친의 예로 녹봉을 주었다.(『고종실록』 44년 6월 23일) 1913년(순종 6) 순종은 영혜옹주의 면례(緬禮)에 장수금(葬需金) 1,000원(圓)을 박영효에게 주었다.

영혜옹주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6-1에 있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純祖實錄)』
  • 『순종실록(純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지두환, 『철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