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정씨(昭容鄭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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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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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소용정씨 |
한글표제 | 소용정씨 |
한자표제 | 昭容鄭氏 |
분야 | 왕족/후궁 |
유형 | 인물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선조~광해군 |
집필자 | 홍연주 |
봉작 | 소용(昭容) |
출신 | 왕족 |
성별 | 여자 |
사망 | 1623년(인조 1) 3월 12일 |
본관 | 동래(東萊) |
주거지 | 서울 |
증조부 | 정광보(鄭光輔) |
조부 | 정사룡(鄭士龍) |
부 | 정상헌(鄭象獻) |
형제 | (오라버니)정지산(鄭之産) |
처_장인 | (남편)광해군(光海君) →무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소용정씨(昭容鄭氏)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광해군일기』 9년 9월 2일, 『광해군일기』 5년 12월 30일, 『광해군일기』 15년 3월 14일, 『인조실록』 1년 9월 14일 |
총론
[?~1623년(인조 1) = ?]. 조선의 15대 왕인 광해군(光海君)의 후궁.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정상헌(鄭象獻)이며, 어머니는 정상헌의 천첩(賤妾)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정순경(鄭純褧)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중추부(中樞府) 판사(判事)정사룡(鄭士龍)이다.
광해군의 후궁
정소용(鄭昭容)이 언제 광해군의 후궁으로 입궐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617년(광해군 9) 정숙원(鄭淑媛)이라는 호칭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전에 이미 숙원의 첩지를 받고 후궁이 된 것으로 보인다.(『광해군일기』 9년 9월 2일) 숙원을 거쳐 이후 소용(昭容)에 오른 그녀는 교태를 잘 부리고 일에 익숙하여 출입하는 문서를 관리하고 임금을 대신하여 계하(啓下)하였으므로 광해군의 믿음이 두터웠다고 한다.(『광해군일기』 5년 12월 30일)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이 발발하자 정소용은 반정 당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광해군일기』 15년 3월 14일),(『인조실록』 1년 9월 14일)
묘소와 후손
정소용의 무덤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정소용은 광해군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두환, 『광해군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