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기(張周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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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803년(순조 3)~1866년(고종 3) = 64세]. 조선 후기 순조(純祖)~고종(高宗) 때의 천주교도로,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이자 성인. 세례명은 요셉. 거주지는 수원과 제천 베론이다.

순조~철종 시대 활동

일명 장낙소(張樂韶)라고도 불린 장주기(張周基)는 경기도 수원 담안 느리지(현 경기도 화성군 양감면 육당리)에서 태어나 1827년(순조 27) 세례를 받고 거의 모든 집안 식구들을 천주교에 입교시켰다. 1836년(헌종 2) 모방(Maubant) 신부가 입국한 후에는 그 고장 전교회장으로 임명받았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안성, 배티, 문경, 원주로 피해 다니다가, 1843년 충청도 제천 배론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1855년(철종 6) 메스트르(Maistre) 신부가 입국하여 성 요셉 신학교를 설립하자 그는 3칸짜리 초가 살림집을 교사(校舍)로 제공하였다. 또한 신학교 설립 후에는 학생들에게 한문을 지도하였으며, 신학교의 경리와 주위에 있는 공소 회장의 역할도 함께 병행하였다. 이후 장주기는 푸르티에(Pourthie) 신부의 도움을 받아 신학교를 11년 동안 관리하며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고종 시대 활동

1866년(고종 3) 조선 최대 천주교 박해인 <병인박해(丙寅迫害)>가 발발하자, 성 요셉 신학교에서 푸르티에, 프티니콜라(Petinicolas) 신부가 서울 포교들에게 체포될 때 함께 붙잡혔다. 그러나 푸르티에 신부가 포졸들에게 약간의 돈을 쥐어주며 장주기를 풀어 줄 것을 요청한 덕분에 즉시 풀려났으나 다음날 선교사들이 떠날 때 소를 타고 그들을 따라갔다. 5리를 갔을 때 푸르티에 신부는 그가 보이자 포졸들을 꾸짖었고 이에 포졸들이 그에게 돌아가라고 강요하자 울며 돌아갔다.

신부들이 체포될 때 포졸들이 음식까지 모두 약탈하는 바람에 먹을 것이 없어지자 장주기는 배론에서 30리 떨어진 노럴골 마을의 한 교우 집에 식량을 얻으러 갔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제천으로 끌려갔다. 그는 심문 과정 중 자신이 천주교도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고백하며 자기가 선교사들의 집 주인이라고 주장하였다.[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이후 서울의 포도청으로 압송되어 모진 고문을 받은 장주기는 2월 8일 군문효수형을 선고받았다.(『고종실록(高宗實錄)』 3년 2월 8일),[『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 3년 2월 8일] 이어 충청도 수영으로 압송된 그는 그해 2월 14일 보령군 갈매못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사망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64세였다.[『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1968년 10월 6일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시복(諡福)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어 성인 반열에 올랐다.

묘소

그의 시신은 다블뤼(Davely) 주교 및 위앵(Huin) 신부와 오메트르(Aumaitre) 신부의 시신과 함께 형장의 모래밭에 매장되었다가 뒤에 그곳에서 10리 떨어진 곳으로 이장되었다. 이후 1882년 3월 블랑(Blanc) 주교의 명으로 발굴되어 11월 일본 나가사키로 보내졌다가, 1894년 5월 다시 서울의 용산 신학교에 안치되었다. 1900년 9월 명동성당으로 옮겨졌으며, 1967년 10월 마포 절두산 지하 성당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품과 일화

장주기의 성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장주기와 함께 성 요셉 신학교 운영을 담당했던 푸르티에 신부는 장주기를 자신의 오른팔이라고 자주 칭하였다. 비록 곤궁에 가까운 처지에 이르렀으면서도 자기 봉사에 대한 보수를 결코 받으려 하지 않았고, 여가를 이용해 자기와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손으로 하는 일을 하였다고 한다.[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포도청등록(捕盜廳謄錄)』
  • 『치명일기(致命日記)』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하,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10,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