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이씨(淑儀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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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 = ?]. 조선의 11대 왕인 중종(中宗)의 후궁.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사섬시(司贍寺) 첨정(僉正)을 지낸 이형신(李亨臣)이며, 다른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중종의 후궁

이숙원(李淑媛)이 어떻게 입궁을 하여 중종의 후궁이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1524년(중종 19) 중종과의 사이에서 아들 덕양군(德陽君)을 낳았는데, 덕양군이 어렸을 때 이숙원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이기묘지명(李岐墓誌銘)」] 중종 사망 후 종2품 숙의(淑儀)로 진봉되었다.[『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7 「중종조고사본말(中宗朝故事本末)」]

묘소와 후손

이숙원의 무덤은 본래 서울시 도봉구 수유동에 있었는데 1981년 현재의 위치인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궁내동으로 이장하였다. 비신의 뒷면에는 1719년(숙종 45) 5대손 이무(李楙)가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재직 시 묘표를 다시 세웠다는 짧은 기사만 있을 뿐, 음기(陰記)는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이숙원은 중종과의 사이에서 1남 덕양군이기(李岐)를 낳았다. 덕양군은 호조 판서(判書)권찬(權纘)의 딸과 혼인하였다.(『인종실록』 1년 1월 24일) 어머니를 일찍 여읜 후 중종의 사랑을 받았으며, 이복형제인 인종(仁宗)과 명종(明宗)과도 사이가 좋았다고 전해진다.[『국조인물고』「이기묘지명」]

참고문헌

  • 『인종실록(仁宗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성남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성남시,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