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방언해(救急方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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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世祖) 대에 응급처치를 위해 편찬된 의학서.

개설

『구급방언해(救急方諺解)』는 여러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응급처치를 위하여 편찬한 『구급방(救急方)』을 언해한 책이다. ‘구급방’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위급한 경우에 환자를 구하기 위한 방법’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병의 치료 및 예방을 목적으로 출판된 책의 이름에 이런 부류의 명칭을 붙인 것들이 여러 종류이다. 그러나 『구급방』류 중에서 최초의 언해서는 『구급방언해』이다. 언제 누가 만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체로 1466년(세조 12) 6월 이전에 책이 편찬ㆍ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구급방언해』는 응급조치를 해야 할 위급환자의 병명과 그 치료법을 36개 항목에 걸쳐 수록하고 있다. 상권은 주로 내과(內科)에 속하는 것으로 중풍(中風) 등 19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고, 하권은 주로 외과(外科)에 속하는 것으로 해산부(解産婦) 등의 응급치료법을 17개 항목에 걸쳐 수록하고 있다. 『구급방언해』의 편찬에 참고, 인용한 의서는 34종이나 되는데, 중국 의학서 28종에 국내 의학서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삼화자방(三和子方)』,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등을 추려 처방을 덧붙였다.

이 문헌의 특징은 15세기 중반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훈민정음을 통해 편찬된 문헌이라는 데 그 가치가 있다. 세조 연간에 간행된 훈민정음 문헌으로서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 중 일부 운서(韻書)를 제외하고는 모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나온 불경 언해류이다. 그런데 이 책의 언해 부분에 들어 있는 표기법ㆍ음운ㆍ어휘 등의 언어 현상은 당시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불경 언해류와 유일하게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의 간행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사실은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세조 대에 『구급방』을 찬집하여 1466년(세조 12) 8도에 2건씩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1466년 무렵에는 이미 편찬과 간행이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세조실록』 12년 6월 13일),(『성종실록』 10년 2월 13일)

서지 사항

2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전하는 책의 크기는 세로 30.0cm, 가로 19.0cm이고, 종이는 닥지이며, 목판본이다.

이 문헌은 현재 국내에는 완질(完帙)이 없고 일본 봉좌문고(蓬左文庫)에만 상하 2책 1질이 전해지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에는 상권 1책이 전한다. 원간본은 전하지 않고, 16세기 중엽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을해자본(乙亥字本)의 복간인 중간본이 전할 뿐이다.

구성/내용

『구급방언해』는 응급조처를 해야 할 위급 환자를 위한 구급 치료법 책이다. 모두 1,368개의 고유어 낱말과 819개의 한자어 낱말이 들어 있고, 이 낱말들의 총 빈도는 17,488개이다.

이 책은 급한 환자를 구하는 약방문을 한글로 언해하고 있는데, 한문으로 한 대목을 쓰고 이어 순한글로 언해했다. 상권은 주로 내과에 속하는 것으로, 중풍(中風), 중서(中暑), 중한(中寒), 중기(中氣) 등 졸도와 뇌일혈, 빈혈, 간질 등 위급과 토사곽란, 토혈, 하혈, 탈양음축(脫陽陰縮), 대소변 불통, 익수(溺水), 목매죽음 등 19항목에 걸친 위급 환자 고치기가 수록되어 있다. 하권에는 외과에 속하는 척상(刺傷), 교상(咬傷), 화상(火傷), 독충상(毒蟲傷) 및 해산부의 응급 치료법이 17항목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한편 『구급방언해』에는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중세 한국어 시대의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희귀한 낱말들이 다수 실려 있는데, 그것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희귀 단일어로서 옛말 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는 ‘러워’, ‘남’, ‘눅눅 면’, ‘니르리’, ‘단기고’, ‘뎨며’, ‘디저겨’, ‘ 며’, ‘쇠-(쐬-)’, ‘아즐 며’, ‘왜지그라’, ‘오틀-’, ‘주므르며’, ‘툽투비’, ‘티쉬여’, ‘헐헐’ 등 16개이다. 이들을 각각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러워(澁)’는 ‘삽(澁)’을 번역한 말이므로 ‘깔깔하다’ 또는 ‘껄끄럽다’의 뜻임을 알 수 있지만, 유일한 예이다. 두 음절 모두 평성으로 되어 있는 어근 ‘남’은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남’처럼 ㄱ을 가진 형태로 등장하다가 이 문헌에 와서 처음으로 ‘ㅅ’을 가진 형태가 나타나 17세기 이후까지 두 가지 어형으로 문헌에 등장한다. 이 낱말은 ‘남’, ‘남즛’, ‘남짓’의 음운 변화를 거쳐 현대 어형이 되었다. ‘눅눅 면(惡)’은 한문 원문의 ‘오심(惡心)’을 ‘안 눅눅다’로 번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눅눅다’는 ‘속이 언짢다’ 또는 ‘느글느글하다’의 뜻이다. ‘이르게’, ‘이르도록’의 뜻을 가진 ‘니르리’도 나오지 않는 희귀단어이다. ‘단기고(定)’는 16세기 문헌에는 한결같이 ‘ -/긔-’로만 나타난다. ‘뎨며(削)’에서 ‘뎨미다’는 ‘저미다(=져미다)’로 풀이되며, 현대어 ‘저미다’의 15세기형인 듯하지만 다른 문헌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점이 특이하다. ‘디저겨(剌)’는 ‘랄(剌)’을 번역한 말이므로, ‘디다’와 관계가 있다. ‘며(堅)’는 ‘단단하다’의 뜻이다. ‘쇠-’, ‘쐬-(熏)’는 현대어의 ‘쐬-(쏘이-)’와 같다. ‘아즐며(昏)’에서 ‘아즐다’는 현대어의 ‘어질어질하-’와 같은 뜻이다. ‘왜지그라(角弓反張)’는 ‘뒤틀리어’, ‘외틀리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왜틀-’은 ‘왜지그라’와 대체로 동일한 의미로 ‘비틀다’의 뜻으로 풀이된다. ‘주므르며’는 현대언의 ‘주무르다’이다. ‘툽투비(濃)’는 ‘진하게’, ‘짙게’, ‘툽툽하게’ 등으로 풀이된다. ‘티쉬여’는 접두사 ‘티-’와 ‘쉬’의 결합으로 ‘치받아 쉬다’로 풀이된다. ‘헐헐’은 현대어 ‘헐떡거리다’, ‘헐떡헐떡’과 관계가 있다.

둘째, 희귀 복합어로서 이 문헌에만 나오는 복합어가 50여 개에 이른다. 이 복합어들은 이 복합어를 이루는 각각의 성분은 당대 다른 문헌에도 나타나지만, 이들 복합형이 별도의 의미를 갖고 쓰이면서도, 다른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 예로는 ‘내사-’, ‘닛’, ‘두세’, ‘두위드듸여’, ‘둥’, ‘물니’, ‘밧목’, ‘삿기밠가락’, ‘졋가락’, ‘죠젼’, ‘찻술’ 등이 있다. ‘내사니(生)’는 ‘살아나니’로 풀이하고 있으며, ‘닛메(齒縫)’는 신체 부위 이름이다. ‘두세(數)’는 현대어와 같다. ‘두위드듸여(蹉)’는 ‘헛디디어’이다. ‘둥(背)’는 ‘등마루’다. ‘물니’는 ‘열과 습기로 말미암아 떠서 상하다’는 뜻으로 ‘썩다’, ‘온기와 더위로 물다’를 의미하며, ‘밧목’은 ‘발목’이다. ‘삿기밠가락(小趾)’은 현대어의 ‘새끼발가락’이다. ‘졋가락’은 현대어의 ‘젓가락’이다. ‘죠젼(紙錢)’은 ‘종이전’ 즉 ‘종이로 만든 돈’이다. ‘찻술’은 ‘차’와 ‘술’의 단순 복합어이다.

또한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한자음 표기에 따라 초성에 ‘ㆆ’, 종성에 ‘ㅱ’과 ‘ㅇ’ 등이 나타나며, 우리말 표기에 있어서도 ‘ㅿ’, 특히 ‘ㅸ’ 등이 쓰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구급방언해』는 여러 구급방 가운데 첫 번째로 언해되었다는 의의가 있다. 또한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16세기 이전의 국어 표기를 보이고 있다는 국어사적 가치 역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김지용, 「구급방 해제」, 『구급방』상, 하, 한글학회, 1975.
  •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세종학연구원, 1996.
  • 이숭녕, 「구급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원, 1991.
  • 최현배, 『한글갈』, 정음사,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