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록언해(敬信錄諺解)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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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경신록언해 |
한글표제 | 경신록언해 |
한자표제 | 敬信錄諺解 |
분야 | 종교/도교 |
유형 | 문헌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고종 |
집필자 | 성낙수 |
간행처 | |
간행년일 | 1796년(정조 20) |
권책수 | 1권 1책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경신록언해(敬信錄諺解) |
1796년(정조 20) 간행된 『경신록(敬信錄)』을 언해한 책.
개설
『경신록언해(敬信錄諺解)』는 도교의 가르침을 기록하여 1796년(정조 20) 한문본으로 간행된 『경신록(敬信錄)』에서 발췌하여 번역하고 언해한 책이다. 같은 도교 서적인 『단계적(丹桂籍)』에서 뽑은 두 조목을 더하여 펴낸 불분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일명 『경신록언석(敬信錄諺釋)』이라고도 한다.
편찬/발간 경위
『경신록』은 원래 중국의 도교서로서, 권선징악(勸善懲惡)과 인과응보(因果應報)의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 소개된 이후 여러 차례 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1796년 경기도 양주(楊州)의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불암사(佛巖寺)에서 처음 간행되었다. 한 해 전인 1795년에 한문본 『경신록』이 역시 불암사에서 간행된 바 있으니, 그 언해본은 같은 곳에서 1년 늦게 세상에 나온 셈이다.
이후 고종(高宗) 때인 1880년(고종 17)에도 임금의 명에 따라 한문본 『경신록』뿐만 아니라 『경신록언석』과 『태상감응편도설언해(太上感應篇圖說諺解)』, 『과화존신(過化存神)』, 『삼성훈경(三聖訓經)』 등 다수의 도교 관련 서적들이 간행된 바 있다.
서지 사항
총 1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로 32.1cm, 가로 22.5cm이다. 지질은 한지이다.
이 책은 1796년(정조 20) 경기도 양주(楊州)의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불암사(佛巖寺)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 그 판목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1795년에 한문본 『경신록』이 역시 불암사에서 간행된 바 있으니, 그 언해본은 같은 곳에서 1년 늦게 세상에 나온 셈이다.
이 외에 ‘광서6년경진계춘간인(光緖六年庚辰季春刊印)’이라는 간기를 가진 이본(異本)은 고종의 명에 따라 1880년(고종 17) 최성환(崔瑆煥)이 번역한 것으로 1권 1책 84장으로 된 목판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된 후쇄본으로, 인쇄 시기만 다를 뿐 동일한 판목으로 찍어냈기 때문에 원간본과 형식 및 내용이 꼭 일치한다. 단지 원간본의 간기와 지(識)가 있는 끝부분의 2장이 없을 뿐이다.
한편 간본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경신록언해』는 선행과 악행에 관한 내용이 수록된 중국의 『경신록』을 언해한 한글 전용의 언해문이다. 전체 86장으로, 한문 원문은 없고 언해만 실려 있다. 언해도 서명과 각 경문의 제목만 한자로 썼을 뿐, 나머지는 모두 한글로만 되어 있다. 언해의 목적이 도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권선징악’을 알리는 인류보편적인 것이라는 것과 내용 전체가 한글 전용이라는 특징은 『경신록언해』가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효용성을 판단할 수 있는 1차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수록된 내용은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문창제군음즐문(文昌帝君陰騭文)」·「문창제군권경자지문(文昌帝君勸敬字紙文)」·「동악대제회생보훈(東嶽大帝回生寶訓)」·「원료범선생입명편(袁了凡先生立命篇)」·「유정의공우조신기(兪淨意公遇竈神記)」·「감응편치복영험(感應篇致福靈驗)」·「음즐문영험(陰騭文靈驗)」·「인시경신록영험(印施敬信錄靈驗)」·「행불귀전공응례 (行不貴錢功應例)」·「공과격찬요(功過格纂要)」 등으로, 여러 도교 서적에서 발췌한 것으로 보인다.
『경신록언해』에는 원문의 어휘를 그대로 한글로 옮겨 쓰는 연용 언해가 많다. 『경신록언해』의 연용 언해는 난해한 한자어들이 아니라, 대부분 일반적으로 쉽게 소통되는 한자어이기 때문에 독자층에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연용 언해가 독자층에게 더욱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되는 이점이 있을 수 있다. 연용 언해를 통해 『경신록언해』의 언해자는 원문 『경신록』을 최대한 살려 전달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경신록언해』에는 언해의 문맥 이해를 위해 설명이나 부가적 정보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두 줄로 쓴 작은 글자의 협주가 있다. 이것은 독자층에서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협주의 형식도 대부분 ‘~것’, ‘~이름’, ‘~말’ 등과 같은 명사로 간결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협주는 『경신록언해』가 독자 중심적임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더불어 협주가 있는 한자어 중 현대국어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것이 상당수 있다. 이는 어휘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자료로서 연구 가치가 높다.
이 책의 문장에서 드러나는 전반적인 표기 양상은 18세기 후반 다른 문헌들의 것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연철보다는 분철 표기가 우세하고(특히 체언과 조사의 결합에서 그러하다), 어두 된소리의 표기가 모두 ‘ㅅ’계 합용병서로 나타나며, 종성의 ‘ㄷ’이 한결같이 ‘ㅅ’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어중의 유기음은 대체로 ‘나코’와 같이 표기되었으나 ‘낫코’, ‘엿치’와 같이 중철식 표기를 보이기도 한다. 한편 음절간 ‘ㄹ-ㄹ’은 ‘진실노’에서와 같이 ‘ㄹ-ㄴ’으로 나타난다.
음운변화의 측면에서는 ‘이러무로’ 등에서 원순모음화를, ‘그치지’ 등에서 구개음화를 볼 수 있으나, 한자어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 ‘거즛말’와 같이 전설모음화는 아직 본격적으로 반영되어 있지 않지만, ‘글읏치며’와 같이 전설모음화를 보이는 예도 있다.
형태면에서는 ‘밧 가든’과 같이 연결어미 ‘-던’이 ‘-든’으로 나타나는 것, ‘ᄒᆞ-’의 활용형이 종종 ‘ᄒᆞ야’가 아닌 ‘ᄒᆞ여’로 나타나는 것, 그리고 아직까지 ‘나라흘, 목굼글’와 같이 이른바 ‘특수어간교체’를 보이는 체언들의 변화에서 ‘ㅎ’과 ‘ㄱ’이 유지되고 있는 것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처격조사의 경우 선행 체언의 음운론적 조건에 관계없이 ‘에’가 우세하고 간혹 ‘의’ 등이 사용되었다.
본문 곳곳에 달려 있는 쌍행의 협주는 이전 시기의 형식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전 시기에는 어구의 뜻을 풀이하는 경우에 ‘명사’ 혹은 지정사가 없는 명사절로 풀이한 것이 많다.
의의와 평가
이 책에 담긴 도교의 교리와 사적(事蹟)들은 우리나라 종교사 연구의 자료가 되기도 하지만 언해문에 반영된 언어 사실들은 우리나라 근대 국어, 특히 18세기 후반의 언어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 남광우, 「경신록언석연구」, 『국어국문학』49·50 , 국어국문학회, 1970.
-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문지사, 1996.
- 최현배, 『고친 한글갈』, 정음사, 1961.
- 홍윤표, 「경신록언석해제」『영인본경신록언석』, 태학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