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집주(四書集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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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송 대의 주희(朱熹, 1130~1200)가 대학(大學)ㆍ중용(中庸)ㆍ논어(論語)ㆍ맹자(孟子) 사서(四書)에 주석을 단 것.

개설

『사서집주(四書集註)』는 사서에 주를 단 것으로, 사서(四書)라 함은 대학(大學)ㆍ중용(中庸)ㆍ논어(論語)ㆍ맹자(孟子)를 말한다. 주희(朱熹, 1130~1200)는 중국 남송시대의 유학자로 號는 회암(晦庵), 회옹(晦翁)인데, 주희가 위의 사서에 주(註)를 단 것을 『사서집주(四書集註)』 라고 한다. 즉 『대학장구집주(大學章句集註)』ㆍ『중용장구집주(中庸章句集註)』ㆍ『논어집주(論語集註)』ㆍ『맹자집주(孟子集註)』가 이에 해당된다.

흔히 사서와 함께 삼경(三經), 또는 오경(五經)이라는 책을 합쳐, 사서삼경(四書三經) 혹은 사서오경(四書五經)이라 한다. 삼경은 시경(詩經)ㆍ서경(書經)ㆍ주역(易經)을 말하고, 오경은 삼경에다가 예기(禮記)ㆍ춘추(春秋)를 더한 것이다. 육경(六經)이면 악경(樂經)이 추가된다.

편찬/발간 경위

송대의 유학자들은 오경보다 사서를 중시하였다. 주희는 사서에 성리학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보고, 여기에 주석을 달아 『사서집주』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원대에 과거 시험의 교재로 채택되었는데, 이후 수백 년 동안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책으로 통용되었다.

주희는 사서를 학문의 기본적 방향이나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든가, 옛 성인(聖人)의 유교(遺敎)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하여, 상호 관련성을 갖게 하여 주석(註釋)을 달았다. 논어ㆍ맹자에 대해서는 제가(諸家)의 주(註)를 취사(取捨)하면서, 주해를 붙였고, 대학ㆍ중용은 장구(章句)로 나누어서, 주석을 붙였다.

서지 사항

5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3.2cm, 가로 14.0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사서집주』는 남송의 대우(大儒) 주희가 유가사상의 정통을 밝히고자, 방대한 고증과 제가(諸家)를 참작하고, 주석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전국시대의 사상가 맹자의 언행을 기록한 것인데, 주희는 『맹자(孟子)』를 공자ㆍ증자ㆍ자사(子思) 등의 유가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보았고, 『대학(大學)』은 인식론과 도덕론ㆍ정치론과의 체계화를 지향하여, 그 장귀를 새로 개편, 주석을 붙였다. 국내 초역인 이 책은 이조 유가들의 기본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수신과 치인의 원천이 되었다.

주희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입각하여 이(理)와 기(氣)를 구분하고, 이를 만물의 근본이 되는 형이상의 도(道)라 하였으며, 기를 만물의 도구(道具)가 되는 형이하의 기(器)라 하였다. 그러나 주희와 거의 같은 시대의 육상산(陸象山)은 견해를 달리하여, ‘심즉리(心卽理)’의 일원론(一元論)을 주장하였다. 그의 육학(陸學)은 심학(心學)이라고도 하였으며, 이것은 명나라의 교육이론으로서 성리학은 마음의 함양을 위한 교육의 필연성과 당위성을 마음 이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왕양명(王陽明)에게로 계승되어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양명학이 정립되었다.

또한 그의 가르침에서 마음은 중층구조로서, 경험 표현이전(未發) ‘형이상의 마음’은 주객구분 이전의 절대선(善)의 ‘본성(性)’을 담고 있으면서, ‘형이하의 마음’에 의해 주객구분의 경험적 표현(已發)을 주재한다. 마음은 정의(情意)적 작용(四端, 七情)과 인식 작용(格物, 致知)을 하면서, 개인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경험의 논리적 원인으로서, 경험적 표현을 관장한다. 이 때 마음이 궁극적 기준인 ‘본성(本性)’에 일치하는 경험적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에 의한 마음의 함양이 전제 되어야 한다. 마음 함양의 교육 목적은 ‘중화(中和)’의 이상적 마음으로서, 이것은 주객구분이전의 마음 상태, 즉 자타가 구별되지 않는 합일된 상태이고, 절대 선한 상태이다. 이러한 교육목적은 ‘도(道)’, ‘경(敬)’, ‘성(誠)’을 내용으로 한 교육에 의해서 추구된다. 이는 현대의 피교육자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론적, 가치론적 전제에 대한 반성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서집주에는 본문(本文)ㆍ집주(集註) 외에 2차 주석격인 ‘비지(備旨)"’가 있는데, 이 비지는 14세기 말 명나라 학자 등림이 사서삼경의 본문내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전거(典據)를 확실히 밝혀 기록한 것이라 하는데, 내용이 방대하고 어려워 국내 학계에서 전부를 완역하지 못했다. 최근에 한학자인 성백효 선생이 집주를 해석하고, 설명을 가한 ‘부안설(附按說) 집주’를 저술하였다

주희(朱熹)는 우리에게는 조선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지배한 이념인 주자학(朱子學)을 창도한 사람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흔히 주자(朱子)로 부른다. 종교적 구원에 대한 열망과 이상사회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처음의 열망이 불교를 비롯하여 당대 선배들의 문을 드나들게 했고, 나중의 열정은 황제에 대한 과감한 충고와 도학적(道學的) 정치참여로 이어졌다. 그는 정치가 인격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허여되어야 한다는 유교의 근본을 재천명했다. 그런 점에서 유학의 창시자 공자와 닮았다. 정치적 이력은 화려하지 못했으며, 만년에는 물러나 책을 편집하고, 제자들과 학문을 논했다.

의의와 평가

『사서집주(四書集註)』는 원나라 시대 이후 관료 선발의 공식 교과서이자, 지식인 사회의 보편 교양으로 기능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유학의 표준으로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 밖에 자신의 시와 글을 담은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과 제자들과의 문답을 주제별로 엮은 『주자어류(朱子語類)』가 있는데, 100권이 넘는 거작이다.

한편 요ㆍ금이 성장하여 송을 압박하자, 한족의 민족의식이 높아져 성리학에서도 대의명분론과 화이관이 강조되었다. 이들 사상은 성리학을 통해 조선과 일본에도 전해졌는데, 조선에서 병자 전쟁 이후 일어난 북벌론과 19세기의 척화론, 일본의 양이론 등에 영향을 끼쳤다.

『사서집주』는 성리학을 통해 우리나라로 전해져, 조선시대 모든 선비들의 필독서였으며, 송나라 이후의 중국인ㆍ한국인ㆍ일본인에게 가장 많이 읽혀진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주희는 성리학의 기본적인 개념, 수행 방법과 예절을 담은 『소학』도 저술하였다. 『소학』은 다른 경전을 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어릴 때부터 널리 교육되었다. 아울러 맹자는 성리학의 바탕이 되는 성선설과 천명사상 등을 주장하여 공자와 더불어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참고문헌

  • 박순철, 「『사서집주』의 『시경』 인용시 주해와 『시집전』 주해 비교연구」, 『중국인문과학』 제50호, 중국인문학회, 2012.
  • 신양재, 「성리학에 나타난 마음이론의 유아교육적 의미 연구: 사서집주(四書集註)를 중심으로」, 『유아교육연구』 제33권 제6호, 한국유아교육학회, 2013.
  • 임동석, 「사서집주 성조변별식(聲調辨別式) 음주(音註) 연구」, 『중국어문학논집』 제26호, 중국어문학연구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