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방유취(醫方類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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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방의학의 백과사전과 같은 의전(醫典).

개설

『의방유취(醫方類聚)』는 1442년(세종 24) 세종이 의서들을 종류별로 모아[類聚] 편찬하기 위하여, 집현전 부교리김예몽(金禮蒙), 저작랑유성원(柳誠源), 사직민보화(閔普和) 등에 명하여, 편성시킨 뒤, 다시 집현전 직제학김문(金汶)ㆍ신석조(辛碩祖), 부교리이예(李芮), 승문원 교리김수온(金守溫)에 명하여 의관(醫官)김순의(金循義)ㆍ최윤(崔閏)ㆍ김유지(金有智) 등을 모아 편집하게 하였다.

그리고 안평대군 용(安平大君瑢)과 도승지김사철(金思哲), 우부승지이사순(李師純), 첨지중추원사노중례(盧仲禮)로 하여금 감수하게 하여, 3년이 지난 1445년(세종 27)에 모두 365권을 편성하여 완료하였다. 그러나 1477년(성종 8) 실제로 간행할 때에는 총 권수 266권 264책으로 되어 있어, 편성 당시보다 훨씬 축소되었다. 본서는 이 때 간행된 의서(醫書) 가운데 그 일부이다.

이 책은 권질이 너무나 방대하므로, 간행될 때까지 여러 해 동안 산삭교정(刪削校正)과 이합정리(離合整理)를 거쳐서, 1477년(성종 8) 5월에 을해자(乙亥字)로 겨우 30질을 인출(印出)하였다. 인출된 뒤 내의원(內醫院)ㆍ전의감(典醫監)ㆍ혜민서(惠民署)ㆍ활인서(活人署) 등을 비롯한 관계관서에 나누어 배치되었다.

간행부수가 겨우 30질 밖에 되지 않고, 그 뒤 다시 재간되지도 못하였으므로, 동양 최대의 의전이면서도 일반적으로 널리 실용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그 서목조차도 비교적 희소하게 보인다. 더구나 의방서인 까닭으로 널리 주목을 끌지도 못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가토[加藤淸正]가 약탈해 가서, 일본 센다이[仙台]의 의사 구토가[工藤家]에 보관해 오다가, 현재 일본 궁내성 도서료(宮內省圖書寮)에 비장된 유일한 을해자 원간본이 남아 있다. 그 뒤 1852년(철종 3) 의관 기타무라[喜多村直寬]가 에도(江戶)에서 10년에 걸쳐 목활자로 축판(縮板), 중간하였는데, 이는 『의방유취』가 완성된 뒤 거의 400여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1965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에서도 모두 11책으로 간행하였다.

이 책이 약탈될 때 12책이 결본되었는데, 중간할 때 의관인 다쿠에[濯江抽齊]가 원간본의 형식에 따라 12책을 보충하여 원간본의 권수와 합치되는 266권의 완본으로 중인 하였다. 그 뒤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이 강행될 때에 일본은 이 원간본이 우리나라에서 망실된 것을 재삼 확인한 뒤, 목활자 중인본 2질을 우리 정부에 수호예물로 헌납하였다. 이 2질 중 1질은 태의원(太醫院)에 보관되었다가, 현재 장서각도서에 이장되었는데, 이미 많이 낙질되었다. 나머지 1질은 고종이 그 당시의 전의인 홍철보(洪哲普)에게 하사하였던 것인데, 그 뒤 다시 홍택주(洪宅柱)가 소장하고 있다가, 현재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지 사항

3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활자본이다. 크기는 세로 22.8㎝, 가로 20.1㎝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의 편집내용에 있어서 제1권 첫머리는 총론으로 논대의습업(論大醫習業)ㆍ논대의정성(論大醫精誠)ㆍ논치병략례(論治病略例)ㆍ논진후(論診候)ㆍ논처방(論處方)ㆍ논용약(論用藥)ㆍ논합화(論合和)ㆍ논복이(論服餌)ㆍ논약장(論藥藏)ㆍ서위의(敍爲醫)ㆍ논형기성쇠법(論形氣盛衰法)ㆍ논여자성쇠(論女子盛衰)ㆍ논장부성쇠(論丈夫盛衰)ㆍ논복약식기(論服藥食忌)ㆍ논포구삼품약석류례(論凉灸三品藥石類例) 등의 제목으로 의료기술ㆍ의료행위ㆍ복약방법ㆍ약품의 분류 등을 열거하였다.

그 다음에는 모든 질병을 91대 강문으로 나누어 각 병문의 아래에 먼저 그 문에 해당되는 병론(病論)을 들고, 그 다음에는 약방들을 그 출전(出典)의 연대순에 따라 열거하였으며, 그 방문들을 채록하는 데에도 연대의 선후와 문자의 중출 및 이동(異同)에 따라 일일이 주해하였을 뿐 아니라, 각 방서들을 원문 그대로 질서정연하게 유(類)에 따라 편입하였다.

그리고 병문 분류방법에 있어 병증을 중심으로 한 것과 신체의 부위로 한 것들이 섞여 있어 근세의학 각 분과의 계통적 지식을 쉽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각 분야에 관한 지식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그리고 이 의전에 인용된 고전 의서들은 한ㆍ당ㆍ송ㆍ원시대에 이르는 중요한 고전 방서들이 153부나 망라되어 있으며, 그 밖에 명초의 방서(方書)들도 보인다.

이는 고려 중엽에 최종준(崔宗峻)이 편성한 『신집어의촬요방』(일명 『어의촬요』)와 같은 고전 의방서들을 원문 그대로 채록하여, 기본 자료에 근거하여, 충실하게 편찬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한의방서들을 유취(類聚)한 총서식 유서라고만 단순히 볼 것이 아니라, 민족문화 건설의 일환으로 우리 의학을 자주적으로 발전시킬 전제로서 고전 한의방서들을 정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외래지식인 한방의학을 자신의 의학으로 쉽게 수용하고, 동화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이러한 정리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먼저 향약을 중심으로 한 『향약집성방』을 완성하고, 그 다음에 이 책을 편집하기 시작한 것에서도 이런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성립과 함께 우리 의학은 더욱 자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게 되었으며, 그 방법도 확대될 수 있었다.

참고문헌

  • 김대형ㆍ안상우, 「『의방유취』에 인용된 『오장육부도』의 저자와 편제에 대한 고찰」, 『한국한의학연구원 논문집』 제9권 제2호 통권 제11호, 한국한의학연구원, 2003.
  • 김두종, 『한국의학사』, 탐구당, 1979.
  • 류정아ㆍ장우창, 「『의방유취(醫方類聚)』에 수록된 『상한론주해(傷寒論注解)』에 대한 고찰」, 『한국의사학회지』 27호, 한국의사학회, 2014.
  • 신순식ㆍ최환수, 「『의방유취(醫方類聚)』에 대한 판본 연구」, 『한국한의학연구원 논문집』 제3권1호, 한국한의학연구원, 1997.
  • 이향영, 「『의방유취』의 양법(釀法)에 관한 문헌고찰」,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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