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숙재집(私淑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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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문인 강희맹(姜希孟)의 시문집(詩文集).

개설

『사숙재집(私淑齋集)』은 강희맹의 시문집이다. 강희맹은 조선 초기 문인으로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다. 부친 석덕(碩德)은 문장가로 이름이 있으며, 형 희안(希顔)은 조선 초기의 유명 화가로 시문에도 능하였다. 강희맹은 24세에 문과에 장원 급제 하였으며, 문장이 뛰어나 세조 시절부터 성종 조에 걸쳐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병조판서ㆍ이조판서를 역임하였고, 좌찬성(左贊成)에 올랐다. 조정의 관료로서 정사에 사리가 분별하고, 공정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특히 시와 문장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 당대의 서거정(徐居正)에 비견되기도 하였으며, 시문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시상의 자유로움과 전아한 기풍이 세간에 높이 평가되었다.

강희맹의 저작 가운데에는 농업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자신의 경험과 견문을 토대로 엮은 『금양잡록(衿陽雜錄)』, 관직을 마치고 촌가에서 두루 겪은 일과 사람들로부터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적어 놓은 『촌담해이(村談解頤)』가 특히 유명하다.

편찬/발간 경위

『사숙재집(私淑齋集)』은 본래 강희맹이 죽은 뒤 본래 서거정이 유고를 정리 편찬하고자 하였으나 가문이 쇠미해지면서, 간행되지 못하였고, 1805년(순조 5)에 문중의 주선으로 선운사(禪雲寺)에서 간행하였다.

서지 사항

12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활자본이다. 크기는 33.5cm, 21.6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두에 서거정(徐居正)의 구서(舊序)와 권말에 10대손 주선(柱善)의 발문이 있다. 권1∼4에 시, 권5는 사(辭)ㆍ부(賦)ㆍ잡저ㆍ가사(歌辭), 권6은 소ㆍ교서(敎書)ㆍ제문ㆍ계문(契文)ㆍ소문(疏文)ㆍ상량문ㆍ책(策), 권7은 서(書)ㆍ행장ㆍ비명ㆍ비음기(碑陰記)ㆍ전(傳), 권8은 기ㆍ서(序), 권9는 설, 권10은 발, 권11은 금양잡록(衿陽雜錄), 권12는 부록으로 행장ㆍ신도비명ㆍ유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설 가운데 ‘기조설(忌蚤說)’ㆍ‘승목설(升木說)’ㆍ‘훈자오설(訓子五說)’ 등은 우언(寓言)과 해학에 뛰어난 저자의 문장 수법을 살필 수 있는 글이다. 『금양잡록』은 농사기술에 관한 기록으로, 농가(農家)ㆍ농담(農談)ㆍ농자대(農者對)ㆍ제풍변(諸風辨)ㆍ종곡의(種穀宜)ㆍ선농기(選農記)의 6단으로 분류되어 있다.

강희맹의 ‘성선설’은 순자의 성악설에 대해 일정한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어린아이의 순수함에서 인간의 본래적인 선함을 보고, 악은 후천적인 욕망에서 초래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예의와 스승 및 본보기〔師法〕에 의해 인간의 악함이 교정된다는 순자의 주장에 대해, 그렇게 교정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본래 선을 행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에 의해 인간본성의 선함을 추론해 낸다. 이것은 맹자가 모든 사람이 다 갖추고 있는 바, 그리고 사람을 짐승과 구별시켜 주는 바, 『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과는 다르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이상으로 삼는 것은 『노자(老子)』의 사상에서 두드러지고, 후에 양명학(특히 좌파)에서도 나타난다.

강희맹의 ‘등산설’은 설 작품으로 ‘삼형제가 산에 오른 이야기’이다. 서사적 흥미를 이용하여 학문의 심오한 경지까지 이르기 위해, 성실한 자세로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귀래정(歸來亭)’ 강희맹이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문체를 빌려, 신말주(申末舟;1439~1503)가 전라북도 순창에 세운 귀래정에 관하여 읊은 오언 율시이다. ‘귀래정’은 신말주가 말년에 순창으로 낙향하여, 1495년(연산군 1)에 지은 정자이다. 현재 있는 귀래정 건물은 1974년에 재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고령 신씨(高靈申氏) 종중이 소유하고 있으며,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귀래정기(歸來亭記)’를 비롯해 강희맹, 김인후(金麟厚) 등의 시문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최근 귀래정 측면에 강희맹의 한시 ‘귀래정’과 김인후의 한시 ‘영귀래정(詠歸來亭)’의 원문 및 한글 번역본을 판각한 비석과 서거정의 ‘귀래정기’ 한문 원문과 번역본을 새긴 비석이 세워졌다. 강희맹의 편액에는 ‘송운(松雲)’으로 쓰여 있다. 『사숙재집(私淑齋集)』 권2에 ‘신참의말주 귀래정 수미음(申參議末舟歸來亭首尾吟)’이라는 제목으로 10수가 실려 있다.

참고문헌

  • 김백희, 「강희맹의 성리학적 사유」, 『한국인물사연구』 제9호, 한국인물사연구소, 2008.
  • 오영교, 『조선 건국과 경국대전체제의 형성』, 혜안, 2004
  • 윤사순, 『한국유학사상론』, 열음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