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병요(歷代兵要)
| 주요 정보 | |
|---|---|
| 대표표제 | 역대병요 |
| 한글표제 | 역대병요 |
| 한자표제 | 歷代兵要 |
| 분야 | 병서 |
| 유형 | 한문 |
| 지역 | 한국 |
| 시대 | 조선 |
| 집필자 | 성낙수 |
| 저편자 | 정인지(鄭麟趾), 유효통(兪孝通), 이석형(李石亨) 등 |
| 간행년일 | 1453 |
| 권책수 | 10책 |
| 소장처 | 규장각 |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 역대병요(歷代兵要) | |
조선 초기 정인지(鄭麟趾)ㆍ유효통(兪孝通)ㆍ이석형(李石亨) 등이 역대의 전쟁과 그것에 대한 선유(先儒)들의 평을 집성한 병서.
개설
『역대병요(歷代兵要)』는 조선 초기 정인지(鄭麟趾)ㆍ유효통(兪孝通)ㆍ이석형(李石亨) 등이 역대의 전쟁과 그것에 대한 선유(先儒)들의 평을 집성한 병서다.
편찬/발간 경위
1450년(세종 32) 세종이 정인지 등에게 명해 역대의 전쟁과 그것에 대한 선유(先儒)들의 평을 집성하도록 하고, 친히 ‘역대병요’라고 책명을 붙였다. 그 뒤 1451년(문종 1) 문종이 김구(金龜)ㆍ김말(金末)ㆍ김담(金淡)ㆍ서거정(徐居正) 외 6인에게 기록을 원전에 확인하고, 음(音)에 대한 주를 보완하도록 하였다.
이 때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이 작업을 지휘한 듯하며, 1453년(단종 1) 그가 단종에게 완성된 것을 바쳤다. 이후 1456년(세조 2)에는 왕명으로 내용이 너무 번다하다 하여, 원본을 간략히 줄여, 무신들에게 교육할 것을 명하였다. 그 해에 이석형이 전라도관찰사로 있으면서, 도사조매(趙枚) 및 광주목사송휴명(宋休明)과 함께 목판본으로 간행했는데, 이것이 현재 규장각도서에 전하는 책이다.
1461년(세조 7)에는 세조가 다시 이석형 등에게 수교(讐校)를 명한 기록이 나오고, 조선 중기 선조 연간에도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계속 중요하게 읽혀진 듯하다. 중국의 『황제탁록(黃帝涿鹿)』에서 시작해 태조이성계의 전적까지 수록하였다.
서지 사항
10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7.4cm 가로 19.2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조선 초는 대외적으로는 남북으로 외세 극복하고, 대내적으로는 새로운 왕조의 기반을 확립하는 상황이었으며, 이것은 병서 간행에 있어서도 전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당시의 병서는 병학 자체의 정립 목적과 아울러 여말의 무장이자, 조선의 개조(開祖)로서 활약상을 반영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고려하고 있다.
조선 초에 출간된 병서는 일부 전쟁사 기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경칠서(武經七書)와 그 주해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병학 정립의 시급성과 아울러, 우리나라 고래의 병서가 전해지지 않았던 데 원인이 있다. 그러나 당시 지식인들은 무경칠서를 권모궤계(權謀詭計)에 치우친 것으로 평가하고, 유가적 입장에서 병학을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로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의 지리적 차별성이 병학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병학과 음양가(陰陽家), 병학과유가(儒家)와의 관계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조선 초의 병서에서는 무엇보다 장수의 문무겸전(文武兼全)의 리더십과 군대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현실적 측면에서 예악(禮樂)과 병형(兵刑)의 겸용(兼用)을 강조하고, 순자(荀子)의 ‘부민(附民; 일민(壹民))의 사상을 대량으로 원용(援用)하고 있다. 이 점은 중국의 병가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성리학의 정립 과정에서 맹자를 전제로 하는 것과는 다른 경향이다.
요컨대 선초 지식인들은 문무병용(文武竝用)이라는 전제하에 병학을 유가의 성현(聖賢)과 연계시키고, 양자의 접합점으로서 인의(仁義), 예악(禮樂), 충효(忠孝), 삼강(三綱), 오륜(五倫)등의 덕목을 들고 있다. 특히 병학을 유가의 삼강이나 오륜과 연계시키는 것은 중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며, 한 마디로 조선 초기 병학의 특징은 ‘병학(兵學)의 윤리화(倫理化)’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역대병요』의 규장각본은 1책이 낙질되었으며, 권2에는 춘추전국시대의 한(韓)ㆍ위(魏)ㆍ조(趙)가 지백(智伯)을 멸하는 기사에서 오기(吳起)ㆍ손빈(孫臏)ㆍ인상여(藺相如)의 전적을 거쳐, 한고조와 항우의 싸움 등 한(漢)이 건국되기까지의 기사를 수록하였다.
권3에는 한고조와 흉노의 싸움을 비롯한 한나라 초기의 전적을, 권4에는 한나라 광무제(光武帝)의 전적부터 제갈량(諸葛亮)과 위(魏)의 싸움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권5에는 역시 제갈량의 싸움부터 남북조시대 초기까지의 싸움을 수록했으며, 권6은 낙질이다.
권7에는 양무제(梁武帝)로부터 당(唐) 초기에 이르는 전적을, 권8에는 당 초기에서 고종의 돌궐(突厥) 경략에 이르는 기사를, 권9에는 당의 안녹산(安祿山)의 반란 등을 수록했으며, 권10에는 당 말기의 기사를, 권11에는 당 말의 혼란기에서 송(宋) 태조의 전적에 이르기까지와 거란이 고려를 공격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권12는 낙질이다.
권13에는 원의 성립과 송의 멸망 과정의 싸움과 원의 일본 정벌 기도에 이르기까지의 중국 전적이 정리되어 있다. 이어 고려가 거란을 파한 내용, 이성계의 홍건적 토벌 등을 수록한 뒤 다시 명이 원을 정벌한 기사가 있다.
그 뒤에는 다시 이성계가 왜구ㆍ원ㆍ여진족 등의 외적을 물리친 기사가 11편 실려 있다. 대개 병략의 요점이 되는 기사를 간략히 정리했으며, 간간이 후대 인물들의 논평을 싣기도 하였다.
말미에는 간행을 지휘한 이석형ㆍ조매ㆍ송휴명과, 감교(監校)한 조호지(曺好智), 교정을 담당한 김백공(金伯恭)ㆍ맹눌(孟訥)ㆍ노미(盧美) 등의 관직과 이름을 수록하고, 각수(刻手) 대선사지선(大禪師智禪) 등 실제 작업을 한 인물 24명의 이름을 실었으며, 간기(刊記)를 밝혔다.
대개 병략의 요점이 되는 기사를 간략히 정리하였으며, 간간이 추대 인물들의 논평을 싣기로 하였다. 말미에는 간행을 지휘한 이석형ㆍ조매ㆍ송휴명과 감교(監校)한 조호지(曺好智), 교정을 담당한 김백공(金伯恭)ㆍ맹눌(孟訥)ㆍ노미(盧美) 등의 관직과 이름을 수록하고, 각수(刻手) 대선사지선(大禪師智禪) 등 실제작업을 한 인물 24명의 이름을 실었으며 간기(刊記)를 밝혔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우리나라의 전사(戰史)를 따로 정리한 『동국병감(東國兵鑑)』을 비롯해 세조의 『병장설(兵將說)』 등과 함께 전사와 전쟁 일반론에 대한 조선 초기의 인식을 전해 주는 책이다. 또한 매우 이른 시기의 책이므로 서지학적으로도 중요하다.
참고문헌
- 국방부, 『역대병요』 Ⅴ, 국방부, 1994.
- 윤무학, 「조선 초기의 병서 편찬과 병학 사상」, 『동양고전연구』 제49집, 동양고전학회, 2012.
- 정해은, 『한국 전통 병서의 이해』, 국방부,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