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통해(四聲通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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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과 『사성통고(四聲通考)』를 보완하기 위해 1517년(중종 12) 최세진(崔世珍)이 편찬한 중국본토자음용(中國本土字音用) 운서.

개설

1455년(단종 3)에 편찬된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의 음계를 보충하고, 자해(字解)가 없는 신숙주(申叔舟)의 『사성통고』를 보완하기 위해 편찬되었다.(『중종실록』 34년 5월 16일)

최세진의 서문에는, 먼저 『홍무정운역훈』의 수록자를 대폭 보충한 『속첨홍무정운(續添洪武正韻)』을 짓고, 이것을 『사성통고』 형식으로 개편하여 『사성통해』를 지었는데, 그가 따로 지은 『노박집람(老朴輯覽)』도 참고하면서, 4년 간에 걸쳐 원고를 일곱 번 고쳤다고 하였다. 이는 조선 시대에 역관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최세진이 편찬한 것인데, 한국 한자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한자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편찬된 운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찬/발간 경위

본래 우리나라의 운서는 시문을 짓거나, 과거 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편찬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광종 때부터 시와 부로서 과거가 실시되고, 중기 이후에는 한시나 한문의 발달에 힘입어 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는 한국 한자음의 체계에 맞는 운서의 편찬이 시도되었는데, 그 첫 번째가『동국정운(東國正韻)』이다. 그 뒤를 이어 『홍무정운(洪武正韻)』ㆍ『홍무정운역훈』ㆍ『사성통고』ㆍ『사성통해』ㆍ『삼운성휘(三韻聲彙)』ㆍ『규장전운(奎章全韻)』ㆍ『전운옥편(全韻玉篇)』 등이 발간되었다. 이들 운서의 특징은 한글로 한자의 음을 표기한 데 있다.

『사성통해』는 역사적으로 다른 운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사성통해』의 바탕이 된 것은 『홍무정운』이다. 이 『홍무정운』의 형식과 내용은 그대로 두고 각 운모의 대표자마다 한글로 한자의 음을 단 것이 『홍무정운역훈』이며, 여기에 글자의 풀이는 생략하고 수록된 한자를 『동국정운』식으로 체제를 개편한 것이 『사성통고』다. 뒤에 최세진은 이에 수록된 한자의 수효를 가감하고, 글자의 풀이는 『고금운회거요』에서 옮겨 적어 『속첨홍무정운』을 편찬한 다음, 이것을 『사성통고』의 형식을 빌어 만든 것이 『사성통해』다. 따라서 『사성통해』의 정음은 『홍무정운』의 음이며, 속음은 『홍무정운 역훈』에 기록된 15세기의 중국 북방의 음이다. 그리고 금속음은 최세진이 살았던 16세기의 북방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서지 사항

총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판본이다. 세로 32.5cm, 가로 20.6cm이고, 지질은 한지이다.

『사성통해』는 을해자(乙亥字)로 된 복각본(覆刻本)으로써,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목판본이 일본의 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1614년(광해군 6)의 목활자본과 1654년(효종 7)의 목판본은 규장각 도서에 있다.

구성/내용

이 책에 수록된 한자의 배열은 『홍무정운』보다 4운(韻)이 많은 80운을 기준으로 하고, 각 운에 속하는 한자는 『사성통고』와 마찬가지로 먼저 자모(字母)순으로 분류하고, 같은 자모에 속하는 한자는 사성(四聲)순으로 나열하였다. 각 소운(小韻)의 대표자(代表字)는 『홍무정운역훈』의 그것과 거의 같으며, 소운 대표자 앞에 그 자음(字音)을 한글로 표음하고, 때로는 속음을 병기하는 방식도 같았다.

구성 내용은 서문 다음에 운모정국(韻母定局)이 있고, 이어서 광운(廣韻) 36자모지도, 운회(韻會) 35자모지도, 『홍무정운』 31자모지도가 실려 있고, 범례 26조항 다음에 동운(東韻)부터 한자가 배열되어 있다. 현전본(現傳本)의 하권 끝에는 『사성통고』 범례 10조와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박통사(朴通事)』 범례 9조, 그리고 동정자음(動靜字音)항이 실려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홍무정운』의 반절은 옮겨 적지 않고, 한글로 표음한 『홍무정운역훈』의 음을 그대로 옮겨 적어, 정음(正音:홍무정운음)과 속음(俗音:15세기 중국북방음)이라 했고, 때로는 최세진이 관찰한 16세기의 북방음을 금속음(今俗音:중원음운음과 같음)이라고 표기하였다. 따라서 『홍무정운역훈』과 『사성통해』는 정음과 속음의 음계가 같고 전탁음을 유지하고 있는 정음·속음의 31성모, 76운목(『사성통해』는 80), 운모 중성도 같다.

둘째, 이 책에서는 중국의 조기관화(早期官話)에서 이미 소실된 입성운미(入聲韻尾)를 그대로 반영하여 『홍무정운역훈』의 정음과는 달리, 정음에서도 입성운미를 표시하지 않았다(약운(藥韻)의 정음만 ‘ㅸ’ 운미 표기). 또한 『홍무정운역훈』에서는 정음입성운미로 ‘ㄱ·ㄷ·ㅂ’을 표기했고, 속음의 입성운미는 ‘ㆆ’(약운만 ‘ㅸ’)이었는데, 『사성통해』의 속음도 이와 같다.

셋째, 수록자의 자순(字順)은 『홍무정운역훈』·『사성통고』와 달랐고 소운 대표자도 다르며, 때로는 『홍무정운역훈』·『사성통고』의 소운을 통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최세진이 『몽고운략(蒙古韻略)』·『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운학집성(韻學集成)』과 『중원아음(中原雅音)』·『고운지음(古韻之音)』 등을 참고로 하여 『사성통해』를 지을 때, 『홍무정운』과 『몽고운략』에서 음이 같은 글자부터 수록했기 때문이다.

넷째, 이 책에서는 ‘정음·속음·금속음’ 이외에 ‘몽고운략음·운회거요음·중원음운음’ 등을 표기하기도 하였다.

다섯째, 자석은 주로 『고금운회거요』에서 취했는데, 자석 가운데에는 451여 단어에 걸쳐 물명(物名) 등을 국어로 기록하기도 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홍무정운역훈』 이래로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여 15·16세기 북방음을 정리하여 당대에 일어난 여러 중요한 변화들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글로 된 자석(字釋)도 있어 국어사의 연구 자료로도 이용되고 있다. 한어음을 한글로 전사한 것은 성운학(聲韻學)적 지식이 필요하지만, 당대의 한글 자음과 모음의 음가를 추정하는 데 이용될 수 있어, 주로 음운사 연구에 중요한 바탕이 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강신항, 『사성통해연구』, 서울:신아사, 1973.
  • 안병희, 「중세어의 한글자료에 대한 종합적고찰」, 『규장각』3 , 서울대학교, 1979.
  • 유창균, 「사성통고재구의 실제적문제」, 『어문학』28, 1973.
  • 유창균, 『몽고운략과 사성통고의 연구』, 형설출판사, 1975.
  • 이돈주, 「훈몽자회한자음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