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四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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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네 가지 기본 경전인 『대학(大學)』ㆍ『논어(論語)』ㆍ『맹자(孟子)』ㆍ『중용(中庸)』을 총칭하는 말.

개설

사서(四書)는 유교의 네 가지 기본 경전인 『대학』ㆍ『논어』ㆍ『맹자』ㆍ『중용』을 총칭하는 말로, 오경(五經)에 상대하는 말이다.『사자서(四子書)』라고도 하며 단순히 『학용논맹(學庸論孟)』이라고도 한다. 『논어』ㆍ『맹자』는 원래 단행본으로 전해내려 왔지만, 『대학』ㆍ『중용』은 『예기(禮記)』 속에 포함된 각각의 한 편(篇)이었는데, 송(宋)나라 때 독립된 책이 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오경’과 더불어 중요한 경전으로 읽혀져 왔고,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설정한 조선에 이르러서는 더욱 중요시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초기인 1419년(세종 1) 세종(世宗)은 ‘문신을 선발하여 집현전에 모으고, 무과 응시도 사서를 통달한 뒤에 하게 했다.’고 하였다.(『세종실록』 1년 2월 16일) 같은 해 11월에는 오백 호 이상 되는 각 고을에 훈도관을 두게 하면서, 훈도관은 사서와 이경(二經)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게 하였다.(『세종실록』 1년 11월 15일)

조선 초기부터 중요 시험 과목으로 활용되던 사서는 1425년(세종 7) 본격적으로 편찬되었다. 그해 10월 세종은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와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에게 “『성리대전(性理大全)』·오경·사서 등을 인쇄하려고 하니, 그 책에 쓸 종이를 값을 주고 닥[楮]으로 바꾸어, 충청도는 3천 첩(貼), 전라도는 4천 첩, 경상도는 6천 첩을 만들어 진상하라.”고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7년 10월 15일)

구성/내용

사서는 『대학』ㆍ『논어』ㆍ『맹자』ㆍ『중용』으로 엮여져 있다. 주자학(朱子學)을 집대성하여 중국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친 주자(朱子)는 『사서대전(四書大全)』을 평생 작업으로 삼아 주해를 달아 『사서집주(史書集註)』를 냈다. 이를 토대로 한 사서가 오늘날까지 전해졌다.

그 가운데 『대학』은 공자(孔子)의 손자 자사(子思)가 『예기』 49편 중에서 42편을 별책으로 엮어 만든 것으로 중국 송(宋)나라 대에 독립되었다. 즉 사마광(司馬光)은 『예기』에서 『대학』을 분리하여 『대학광의(大學廣義)』를 지었고, 이정자(二程子)는 『대학정본(大學定本)』을 지어, 사서중 하나로 칭하였다. 『대학』의 내용은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학문과 덕행을 연마하여 자신의 덕에 진보한 후 타인의 덕을 밝혀 조화를 이루고자하는 원리가 제시되어 있다. 삼강령은 교육의 목적이며, 이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 팔조목이다. 이후 주자가 『대학장구(大學章句)』를 만들어 경 1장, 전 10장으로 구별 지어 주석을 가하면서 널리 세상에 퍼졌다.

『논어』는 공자의 어록이 담긴 경전으로, 공자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것이다.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학이(學而)」, 「위정(爲政)」, 「팔일(八佾)」, 「이인(里仁)」 등 각 편의 제목들은 각각 맨 위 글자를 따라 붙인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공자의 어록이며, 공자와 제자들과의 대화, 제자들의 말이 함께 덧붙여 있으며, 공자가 학문에 뜻을 두어 학문을 이루기까지의 그의 행적과 사상 등이 기록되어 있다. 『논어』라는 책명이 실려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예기』이며, 주석서로는 위(魏)나라 하안(河晏)이 쓴 『논어집해(論語集解)』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맹자』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추(鄒)나라에서 태어나 자사의 문인에게서 수학한 맹자(孟子)에 의해 쓰인 유교의 경서로,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유교를 ‘공맹지도(孔孟之道)’라고 불릴 정도로 공자 사상에 있어 정통성의 맥을 이어간 인물이다. 맹자의 학설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인성론(人性論), 수양론(修養論), 정치론(政治論)으로 나타난다. 맹자의 인성론은 인간의 본성을 논한 것으로 성선설(性善說), 사단설(四端說), 양지양능설(良知良能說)로 체계화되었다. 그 가운데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대표적인 학설이 되었다.

『중용』은 원래는 『예기』 49편 가운데 31편이었다. 『중용』의 저자가 자사라는 견해에는 많은 논란이 있으나,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자사가 중용을 지었다고 하였다. 『중용』은 총 33장으로 되어 있는데, 책 전체의 중심사상이 나오는 1장은 자사가 지은 것으로서 확실시된다.

『대학』이 단행본으로 된 것은 사마광(司馬光)의 『대학광의』가 처음이고, 『중용』은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 『중용설(中庸設)』이라는 책이름으로 등장한다.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에 따르면, 육조시대(六朝時代)에 이미 단행본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송사(宋史)』「도학전(道學傳)」에 의하면, 『대학』ㆍ『중용』은 정호(程顥)ㆍ정이(程頤)에 의해, 『논어』ㆍ『맹자』와 더불어 육경(六經)에 앞서 읽어야 할 유교의 기본 경전으로 인정되었다.

한편 정호ㆍ정이는 『대학』이나 『중용』에 대해 별도의 주석을 하지 않았으나, 주자가 『대학』ㆍ『논어』ㆍ『맹자』ㆍ『중용』을 사서로서 표장(表章)하고, 여기에 주석을 가하여, 『사서집주』, 즉 『대학장구』 1권, 『중용장구(中庸章句)』 1권, 『논어집주(論語集注)』 10권, 『맹자집주(孟子集注)』 7권을 저술함에 이르러 사서는 크게 행하여졌다. 또한 원대(元代) 인종(仁宗) 2년에 주자의 『사서집주』를 과거의 기본 교재로 인정한 이후 학자들에 의해 크게 존숭을 받았다. 송대 이후로는 반주자학파(反朱子學派)에서도 사서를 중시하였으며, 청대(淸代)의 고염무(顧炎武) 등은 이것이 경학(經學) 쇠퇴의 원인이라고 지적하였으나, 사서를 중시하는 학풍은 변함이 없었다.

사서의 독서 순서는 송대의 정주(程朱) 이래로 『대학』ㆍ『논어』ㆍ『맹자』ㆍ『중용』의 순서였으나, 명대(明代)부터 지면이 많고 적음, 제본의 편의를 위해, 『대학』ㆍ『중용』ㆍ『논어』ㆍ『맹자』의 순으로 편집ㆍ간행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송영배, 『중국사회사상사』, 한길사, 1986.
  • 후외노(侯外盧) 주편, 양재혁 역,『중국철학사』, 일월서각, 1988년.
  • 장백잠(蔣伯濳)·장조이(蔣祖怡) 푠, 최석기·강정화 역주, 『유교경전과 경학』, 경인문화사, 2002.
  • 진강풍(陈江风), 『중국전통문화도론(中國傳統文化導論)』, 북경항공항천대학 출판사, 2010.
  • 최진덕, 『군자의 나라-일상을 지배한 인간의 윤리 사서오경』, 명진출판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