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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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成宗) 대인 1478년(성종 9)에 간행된 지리서.

개설

조선왕조 건국 후 국가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 성종(成宗)대에 간행한 지리서. 현존하지 않으나, 이후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저본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왕조가 건국된 후, 새로운 지리지를 간행하고자 하는 시도는 초기부터 있었다. 특히 세조(世祖)가 새로운 지리서 편찬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단종(端宗)대부터 이미 지리지에 관심을 가지고 편찬에 착수하였고,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한 예종(睿宗)대를 거쳐 성종대인 1478년에 이르러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를 완성하였다. 양성지(梁誠之)가 왕명을 받아 편찬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사가집(四佳集)』,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눌재집(訥齋集)』]

양성지의 문집인 『눌재집』에 의하면, 단종 때인 1453년(단종 1) 10월에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킨 직후 양성지에게 지리지 편찬을 명했다고 한다. 이것이 『팔도지리지』 간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경기도의 지리지를 만들고, 그 다음에 평안도의 지리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진행이 더뎌 세조 때에 팔도를 아우르는 지리지 간행은 마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예종이 즉위한 직후인 1468년 11월, 다시 왕명에 의해 팔도의 지리지 간행이 시작되었다. 양성지는 당시 전교서(典校署) 교리(校理)였던 김윤겸(金允謙)을 데리고 지리지 편찬에 착수하였다. 이전에 간행된 지리서와 각종 문서들을 검토하여 1477년(성종 8) 12월에 책을 완성하였다고 한다.[『눌재집』]

서지 사항

1권 8책. 『팔도지리지』는 현존하지 않지만, 『눌재집』에 의하면 각 도를 한 권으로 묶어 8책으로 완성하였다고 한다.[『눌재집』]

구성/내용

현재 전하는 『팔도지리지』가 없기 때문에 내용과 구성을 알 수 없다. 다만 예종대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贊地理志)』가 남아있어 그것을 토대로 『팔도지리지』의 내용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경상도속찬지리지』가 단독의 도 지리지라기보다는 『팔도지리지』 편찬을 위한 지방 자료의 수집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팔도지리지』는 중앙에서 내려 보낸 ‘지리지속찬사목(地理志續贊事目)’에 의해 작성된 『경상도속찬지리지』와 같은 형식을 갖추었을 것으로 보인다.

『경상도속찬지리지』의 편목을 보면, 행정, 경제, 군사, 사회, 예속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행정조에는 유명 영현(領峴), 도진(渡津), 교량(橋梁), 원우(元宇), 속현(屬縣), 향소부곡(鄕所部曲)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경제조에는 제언(堤堰), 관개전(灌漑田), 염분(鹽盆), 어량(魚梁), 도기소(陶器所), 자기소(磁器所), 세공정철(歲貢正鐵) 등의 현황을 기록하였으며, 군사조에는 봉화(烽火), 참역(站驛), 목장(牧場), 성곽(城廓), 병선(兵船), 선군(船軍), 진군(津軍), 보병(步兵), 기병(騎兵), 험조요해(險阻遼海), 야인소거(野人所居) 등의 현황을 기록하였다. 예속조에는 능묘(陵墓), 누대(樓臺), 제영(題詠), 승사(僧寺), 정표문려(旌表門閭)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팔도지리지』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데, 양성지가 성종 때에 『팔도지리지』를 인쇄하여 관청에 보관해야한다고 건의한 것이 눈에 띌 뿐이다.(『성종실록』 13년 2월 13일) 세종(世宗) 때 간행된 『팔도지리지』는 다른 책이다.(『세종실록』 14년 1월 19일) 이 책은 보통 『신찬팔도지리지(新贊八道地理志)』로 언급하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팔도지리지』는 조선왕조의 건국 후 위정자들이 국가의 통치를 위해 지리지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후 제작된 『동국여지승람』의 형식이나 내용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비록 현존하지는 않으나 앞서 제작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나 후대의 지리지와 『경상도속찬지리지』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조선 초기 국가 체계 및 주요 현황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국가 통치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내용이 수록되었다면, 『팔도지리지』에는 시문, 승사, 능묘, 명환(名宦), 효자, 열녀 등 역사나 문화에 관련된 내용까지 포함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즉, 조선왕조의 국가체계가 점차 안정되고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유교문화가 발전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사가집(四佳集)』
  • 『눌재집(訥齋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료실(http://e-kyujanggak.snu.ac.kr)
  • 정두희, 『왕조의 얼굴』, 서강대학교출판부,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