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書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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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경전으로, 오경(五經) 가운데 하나.

개설

『서경(書經)』은 오경 중의 하나로, 중국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정치를 기록한 책이다. 고대에는 제도상으로 사관(史官)이 있어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 변동·문물제도 등을 낱낱이 문자로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그저 『서(書)』라 일컬었으며, 때로는 왕조(王朝)의 이름을 앞에 붙여 『우서(虞書)』·『하서(夏書)』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공자(孔子)는 이 ‘서’를 대단히 중하게 여겨 번잡한 것을 정리해 다시 편찬했다고 하며, ‘시(詩)’와 더불어 제자들의 교육에 핵심적인 교과 과정으로 삼았다. 한대(漢代) 이후 『상서(尙書)』라 일컬었는데, ‘상(尙)’은 ‘상(上)’과 통하여 ‘상대(上代)의 서(書)’라는 뜻이라고 한다. 송대(宋代)에 와서는 다시 『서경(書經)』이라 불렸으며, ‘경(經)’은 ‘경전(經典)’이라는 말로 성인이 산정(刪定)한 책이라는 존중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지금에 와서는 『상서』·『서경』의 두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고증이 어렵고 난해한 글로도 알려져 있다.

편찬/활용

이 책은 조선시대 경세(經世)와 위정(爲政)의 지침서로 중시되어 왔다. 조선 초기에는 세종(世宗)의 명에 따라 목판에 새겨 간행되었다.(『세종실록』 9년 9월 3일)

서적 그 자체 외에도 『서경』은 판화를 통한 시각적 이미지로도 활용되었다. 그려진 양상을 살펴보면, 크게 ‘학습적 이해용’, ‘교훈적 감계용’, ‘유희적 감상용’이라는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학습적 이해용’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에게 학습교재용으로 사용된 책은 『서전대전(書傳大全)』에 실린 제도, 기물, 복식문양 등에 관련된 판화도들이며, 이 책의 이미지는 이후 출간된 다양한 서적에서 복사되고 재활용 되었다. 예를 들어 『삼재도회(三才圖會)』에서 경전의 내용을 이미지로 소개할 때 주로 『서전대전』의 그림을 사용하였다. 특기할 점은 『서전대전』의 「선기옥형도(璿璣玉衡圖)」 삽입으로, 이는 천문학의 전개에 힘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교훈적 감계용’으로는 『서경』의 「무일도(無逸圖)」와 「치수도(治水圖)」가 널리 그려진 것을 들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왕실에서 출간한 행실도(行實圖)류에도 『서경』의 등장인물 그림 및 고대 왕실과 관련된 제왕 표현이 등장한다. 그 외에 중국 역대 제왕을 보여주는 회화 및 판화들 역시 이에 해당한다. ‘유희적 감상용’으로는 감상용 그림이 대부분인데, 병풍(屛風) 혹은 화첩(畵帖)의 회화 작품에 요(堯)ㆍ순(舜) 등이 등장하는 경우이다.

구성/내용

이 책은 기원 전 60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성왕(聖王) · 명군(名君) · 현신(賢臣)이 남긴 어록이자 선언집이다. 오경에 속하며, 중국 정치의 규범이 되는 책이다. 옛날에는 『서(書)』 또는 『상서(尙書)』라 했는데, ‘글로 쓴 것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핵심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내용은 요·순·우(禹)의 치세를 중심으로 하(夏)나라 중기까지의 주요 사적이다. 『주서(周書)』는 『서경』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분량도 가장 많다. 『상서』와 마찬가지로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폭정에 대해 군사를 일으킨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서언 ‘태서(泰誓)’, ‘목서(牧誓)’부터 시작하여,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정(鄭)나라를 공략할 때의 ‘진서(秦誓)’에 이르기까지 주나라 초기에서 춘추시대(春秋時代)까지 담겨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홍범(洪範)’으로, 은나라 왕족이면서 주왕에게 반항했던 기자(箕子)가 우에게서 전해 받은 천지의 대법(大法)과 정치, 도덕을 논한 것으로 다음과 같이 9조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 오행(五行 : 자연계의 5대 원소인 수 · 화 · 목 · 금 · 토)에 관한 일.

둘째, 오사(五事 : 모양(貌), 말하는 것(言), 보는 것(視), 듣는 것(聽), 생각하는 것(思))에 관한 일.

셋째, 팔정(八政 : 정치의 기본이 되는 음식(食), 재물(貨), 제사(祀), 최고 관직(司空), 교육(司徒), 사법(司寇), 어전 외교(賓), 군대(師))에 임하는 일.

넷째, 오기(五紀 : 역법의 기본이 되는 1년의 기간(歲), 달(月), 일(日), 별의 운행(星辰), 역수(曆數))를 정리하는 일.

다섯째, 황극(皇極 : 임금의 정치와 덕의 준거)을 세우고 임금 스스로 올바르게 실천해 백성이 따르게 하는 일.

여섯째, 삼덕(三德 : 정직(正直), 강극(剛克), 유극(柔克))을 갖추는 일.

일곱째, 계의(稽疑 : 점으로 의문을 밝히는 것)에 관한 일.

여덟째, 서징(庶徵 : 자연 현상 가운데에서 선악의 징후를 발견하는 것)에 관한 일.

아홉째, 오복(五福 : 장수(壽), 부귀(富), 건강(康寧), 선행(好德), 인생 계획(終命))이 선행에 따르고, 육극(六極 : 흉단절(凶短折), 흉은 재난을 만나 죽는 것, 단은 60세 이전에 죽는 것, 절은 30세 이전에 죽는 것), 병(疾), 걱정(憂), 가난(貧), 악함(惡), 약함(弱)]이 악행에 따르는 일.

전설에 따르면 공자가 고대의 기록 3,240편 가운데서 102편을 선별해 편찬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 틀은 아마도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100편의 제목이 적힌 목록이 남아 있으며, 본문이 현존하는 것은 전설상의 성왕인 요·순부터, 춘추시대 진나라의 목공에 이르는 58편뿐이다.

그 중 진(秦)나라의 박사였던 복생(伏生)이 전한 32편은 그 무렵 통용되는 문자로 적었다 하여 ‘금문상서(今文尙書)’라 하고, 공자의 자손이 살던 집의 벽에서 나왔다는 25편은 ‘고문상서(古文尙書)’라고 한다. 이 둘은 엄격히 구별되지 않은 채 경서로 존중되어 왔으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고문상서’의 내용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청(淸)나라 초기 염약거(閻若璩)의 『고문상서소증(古文尙書疏証)』에 이르러서 후세의 위작이라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밝혀져서, 오늘날에는 이 25편을 ‘위고문상서(僞古文尙書)’라고 한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고대혁, 「『서경』「우서」의 내용체계와 유학 사상적 의미」, 『동양고전연구』57, 동양고전학회, 2014.
  • 고연희, 「『서경(書經)』의 이미지화 고찰」, 『온지논총』 42, 온지학회, 2015.
  • 김명환, 「『서경질서』 규장각본에 대한 고찰」, 『태동고전연구』 30, 태동고전연구소, 2013.
  • 남상호, 「서경의 정치 사상과 공자인학」, 『동서철학연구』 27, 한국동서철학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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