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훈언해(女訓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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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2년(중종 27) 최세진(崔世珍)이 『여훈(女訓)』을 언해한 책.

개설

『여훈언해(女訓諺解)』는 1532년 최세진이 『여훈』을 언해하여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행한 책이다.(『중종실록』 27년 9월 12일) 현재 전하는 책은 인조(仁祖) 연간, 특히 1620년(광해군 12)∼1630년(인조 8) 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훈』은 명(明)나라 무종(武宗) 때 성모장성자인황태후(聖母章聖慈仁皇太后)가 1508년 편찬한 것이다.

서지 사항

총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잇으며, 지질은 한지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 중이다.

구성/내용

이 책은 어제여훈서·여훈서(女訓序)·여훈목록(女訓目錄)·본문·여훈후서(女訓後序)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본문은 규훈(閨訓)·수덕(修德)·수명(受命)·부부(夫婦)·효구고(孝舅姑)·경부(敬夫)·애첩(愛妾)·자유(慈幼)·임자(姙子)·교자(敎子)·신정(愼靜)·절검(節檢) 등 12장으로 되어 있다.

지금 전해지는 책은 최세진이 언해한 『여훈언해』의 중간본일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으나, 이 책의 앞에 명나라 세종(世宗)이 1530년에 쓴 「어제여훈서(御製女訓書)」가 있어서, 시간상으로 무리인 듯하다. 오히려 최세진이 언해한 것은 1459년(세조 5)에 이극담(李克堪) 등이 찬진(撰進)하였다는 『역대여훈(歷代女訓)』일 가능성이 높다.

만송문고본인 『여훈언해』는 상권에는 한자원문이 모두 한꺼번에 실려 있고, 그 뒤에 각 목차별로 원문의 한자음과 한글토를 달아놓은 다음 이를 다시 한글로 번역하여 놓았다. 하권은 그 계속이다. 이러한 체재를 사용한 것은 부녀자들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해지는 책에는 어제서(御製序)부터 맨 끝의 후서(後序)까지 서문이 모두 네 개나 있는데, 맨 앞에 「어제여훈서(御製女訓序)」(1530)가 있고, 그 다음에 순일도인(純一道人)이 쓴 것으로 된 「여훈서(女訓序)」(1508)가 붙어 있다. 이어서 같은 시기에 쓴 것으로 필자가 나타나지 않은 「여훈서(女訓序)」(1508)가 또 있다. 그런 다음에 본문이 다 끝나고, 마지막에 「여훈후서(女訓後序)」가 또 있다. 여기서도 쓴 시기만 밝혔을 뿐 쓴 사람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내용을 검토해 보면, 쓴 사람을 어느 정도는 추측할 수가 있다.

『여훈언해』는 명나라 때의 한문으로 된 여훈을 우리말로 번역한 언해서이므로, 이 책에 나타나는 번역상의 여러 현상에 대한 언해서로서의 가치 평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구결문과 언해문에 나타나는 한자어의 표기 방식과 그 연원 그리고 한자 독음의 혼용 및 한자 독음의 누락 등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

한자어 어근 표기와 파생부사 ‘―히’의 표기 방식에서 한자표기, 한자 정음 혼종 표기, 또는 정음 표기가 뒤섞여 나타나는데, 이들 대부분은 원문 흔적 남기기에 의한 원문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들 표기 방식의 차이는 통사적 혹은 의미적 요인보다는 거의가 언해자의 자의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다. 또한 이들 표기 방식간의 빈도수는 개별 어휘에 따라 분포가 달라서 경향 파악이 쉽지 않다. 이러한 언해자의 자의성에 의한 혼용표기는 언해 과정상 정립된 기준이 없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훈언해』의 구결문과 언해문의 한자에는 독음이 병기되어 있는데, 동일 한자의 독음이 서로 달리 나타나는 것이 많다. 이는 언해자가 언해를 할 때 해당 언해서의 한자 독음에 대한 규범적 통일 의식이 부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자 독음이 누락된 부분이 나타나는데, 이는 언해자나 간행 종사자들의 부주의에서 오는 것으로 언해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한자 독음의 혼용이나 누락 등은 언해서 전체의 형식적 통일성에서 벗어난 것으로 번역비평적 관점에서 본다면 체계성이 다소 부족한 언해서라 할 수 있다.

『여훈언해』는 표기법상으로 보아 17세기 초기에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어말자음의 'ㅅ'과 'ㄷ'이 혼기(混記)되고 있으며, 어간과 어미 사이에서 중철표기(重綴表記)가 보이지 않고, 대신 분철표기(分綴表記)가 나타난다. 구개음화된 예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두자음들의 표기에 ‘ㅆ’ 이외의 각자병서가 쓰이지 않고, '모 리', '몸을 려' 등과 같이 ‘ㅂㅍ, ㅽㄱ’ 등이 보인다. 이와같은 표기현상은 『화포식언해』 초간본에 보이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17세기 초기에 간행된 문헌으로 추정된다.

또한 ‘인ᄂᆞ 집, 되얀ᄂᆞᆫ 이, 양진물’에서처럼, 받침에서 중화됨과 비음화 현상이 표기에 반영됐으며, 유성음 사이에서 ‘ㄱ’이 탈락되지 않고 쓰인다. 의도를 나타내는 접미사 ‘-오/우-’가 전반적으로 쇠퇴했으나, ‘ᄒᆞ다’류 용언에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ㅎ 말음 체언’도 대부분 중세 국어만큼 유지되고 있다.

어휘는 16-7세기에 처음 등장하는 새로운 낱말이 보이지만, 중세국어에서 쓰인 낱말만큼 활성화 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ᄃᆞᆯ다, , 처음, 앞’과 같은 변화된 것이 예전의 ‘글다, , 처엄, 앒 ’만큼 많 쓰이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17세기 국어의 연구에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내훈』 · 『여사서언해』와 함께 과거 여성생활의 규범을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이기문, 『16세기 국어의 연구』, 탑출판사, 2006.
  • 이상규, 「통제와 절제의 미학, 여성 교훈서 『여사서언해』」, 『역주 여사서언해』1·2·3·4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14.
  • 최현배, 『고친 한글갈』, 정음사, 1961.
  • 허웅, 『16세기 우리 옛말본』, 샘문화사,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