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문감(東國文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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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김태현(金台鉉)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시문선집(詩文選集).

개설

『동국문감(東國文鑑)』은 우리나라 최초의 문선집이다. 고려말기의 문신 김태현(金台鉉)이 편집한 시문선집(詩文選集)으로 고대로부터 고려 말기까지의 제가(諸家)의 시문을 수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서거정(徐居正)의 『동문선(東文選)』 서문에, “김태현이 편찬한 『문감』은 소략하여 실패하였고, 최해(崔瀣)가 편찬한 『동인문(東人文)』은 산일된 것이 많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보면 『동국문감』의 규모가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최해의 시문선집인 『동인문』과 같은 성격의 책자로 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동국문감』이 시문선집이라는 것을 알 뿐이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의 저자 김태현(1261~1330)은 본관이 광산(光山)이며, 자는 불기(不器)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275년(충렬왕 1) 감시(監試)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다음해 문과에 급제, 판도총랑(版圖摠郞)ㆍ우승지를 역임하고, 1302년(충렬왕 28) 밀직부사로 승진히였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사명을 띠고 원나라에 갔다.

때마침 원제(元帝)가 감숙(甘肅)에 있으면서, 진공사(進貢使)는 모두 연경(燕京)에서 기다리라 했다는 말을 듣자, 중서성(中書省) 관리에게 “연경에서 기다리라는 것은 제(帝)의 명이요, 제의 행재소(行在所)까지 가라는 것은 우리 군주의 명령이니, 제에게 벌을 받는 한이 있어도 감히 군주의 명을 어길 수가 없다”고 말하자, 과연 옳은 말이라 하여, 그를 행재소로 가게 하였고, 원제는 그 충성을 치하하여 정동행중서성좌우사 낭중(征東行中書省左右司郞中)으로 임명하였다.

1306년 도첨의사지사(都僉議司知事)가 되어 원나라로 가서, 그 곳에 머물고 있는 충렬왕의 아들(충선왕)과 왕을 이간시키려는 도당들의 흉계를 밝히고 돌아와서, 밀직사지사(密直司知事)가 되고, 충선왕(忠宣王)이 복위한 뒤 삼사판사(三司判事)를 지냈다. 충숙왕(忠肅王) 때 평리(評理) 등을 거쳐 중찬(中贊)에 이르러 벼슬에서 물러났다. 성품이 강직하고 사람을 접대할 때에는 온화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김태현은 『동국문감』을 50대 이후의 한거하는 동안에 이 책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빼어난 능력과 도덕적 품성으로 두루 존경받는 명망가이던 그가 문인유자들의 오랜 염원을 배경으로 엮은 최초의 시문선집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호평과 함께 고려 말에는 이미 간행 유포되었다. 그러나 시문을 취사선택한 기준이나 혹은 그것을 분류, 편집한 체재상의 한계가 지적되었다.

구성/내용

『동국문감』에는 주로 고려 문인의 시문이 수록되었다. 작자별로 시기 순에 따라 시문을 배열하면서, 그에 서(序)나 혹은 분주(分註)를 덧붙이는 형식이었다. 작자를 소개하고 시문을 해설하거나, 평하기 위함이었다. 주해(註解)에는 때로 신이한 설화도 이용되었다.

『동국문감』은 유교 지식인 김태현의 시대적 성찰이 반영된 저작물이었다. 정치적인 역경에 처하여 고려와 원의 관계를 되돌아보며 자기정체성을 재인식한 그가 고려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드높이고자 엮어낸 시문선집이었다. 중국과 구별되는 고려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나름의 고유한 인문전통이 이어져 왔으며, 그 수준 또한 중국에 손색없음을 널리 원나라의 문인관료들에게까지 알리려는 문화적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아울러 천계(賤系)의 정치적 진출을 비판하며 문신유자 중심의 사회가 도래하기를 염원하는, 바꿔 말해서 고려전기 사회를 그리워하는 향수의 발로이기도 하였다.

고려 시대의 시가(詩歌)는 초기의 작가로 박인량(朴寅亮)·김황원(金黃元)·정지상(鄭知常) 등을 들 수 있으며, 최충도 훌륭한 시인이었고,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金富軾)도 뛰어난 시인이었다. 한편 이인로(李仁老)·임춘(林椿) 등도 운문에 정통한 시재(詩才)들이었다.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은 서사시의 백미라 할 수 있으며, 그후 이승휴(李承休)가 지은 『제왕운기(帝王韻紀)』도 이름이 높다. 고려시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사(辭) ·부(賦)도 한문학상 간과할 수 없으니, 이인로의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는 한국의 한문학사상 처음 나타난 사이다. 그 후 이색은 『유수사(流水辭)』를 비롯한 여러 편의 사를 지었다. 『동국문감』에는 이런 내용들이 실려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동국문감』은 한국사상 최초이자 나름의 독자적 체제를 갖춘 시문선집이었다. 나아가 김태현의 개인적인 관심과 노력의 결정이기도 하였다. 문선집의 출현을 갈망하던, 원의 간섭하의 고려 문인유자의 일원으로서, 시대적인 소명에 부응해야 한다는 지식인의 사명감에 따라, 이룩한 성과였다. 또한 고려의 독자적인 역사와 인문전통을 부각시킴으로써 문화적 자긍심을 드높이고자 하는 의도의 산물이기도 하였다. 고려의 문화가 중국에 비해 손색없을 만큼 우수하며, 원이 아니라 고려야말로 진정한 인문전통의 계승자임을 자부하는 의식이 담긴 저작물이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 김건곤, 「고려시대의 일실(逸失) 시화·시평집 고찰 : 『잡서』, 『속파한집』, 『동국문감』을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제27권 제1호 통권94호,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 변동명, 「김태현의 『동국문감』 편찬」, 『진단학보』 103호, 진단학회, 2007.
  • 정선모, 「고려 중기 동인(東人)의식의 형성과 시문선집(詩文選集)의 편찬」, 『동양한문학연구』 제36집, 동양한문학회,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