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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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鄕藥)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처방을 묶어 놓은 의학서.

개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은 고려시대에 향약으로 질병을 치료하기 만든 편자 미상의 의학서이다. 이 책의 책명으로 되어 있는 ‘향약’은 자기 나라 향토에서 산출되는 약재를 의미한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약을 당재(唐材) 혹은 당약이라고 부르는 데 대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총칭한다. 고려 중기 후반 경에 이 책을 간행하게 된 것은 종래에 많이 사용되던 외국산 약재들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향약으로 충당하고자 한 것으로, 이때부터 우리 의약을 자주적 방향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운이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편찬/발간 경위

본래 고려시대 1236년(고종 23)경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만들던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처음으로 간행하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고려 중기 후반 경에 간행된 이 책은 중국에서 약재를 수입할 수 없었던 몽고전란기 상황에서 약재의 구성을 향약으로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지배층을 위한 구급 의학서라는 견해도 있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1417년(태종 17) 7월 경상도 의흥현(義興縣 : 지금의 군위군 의흥면)에서 중간하였다. 그러나 현재 둘 다 전하지 않고 1417년 간본 1부가 일본궁내청 서릉부(宮內廳書陵部)에 비장되어 있다.

한편 1427년(세종 9) 『향약구급방』을 인쇄하여 의료에 폭넓게 쓰자는 황자후(黃子厚)의 건의에 따라 충청도에서 간행하도록 한 기록도 남아 있다.[『세종실록』 9월 11일 4번째기사]

구성/내용

이 책은 상·중·하 3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상권 18목(目): 식독(食毒)·육독(肉毒)·균독(菌毒)·백약독(百藥毒)·별독(蟞毒)·골골(骨䱻)·식열(食噎)·졸사(卒死)·자액(自縊)·열탕(熱湯)·낙수(落水)·중주(中酒)·단주(斷酒)·타절(墮折)·금창(金瘡)·후비(喉痺)·중설(重舌)·치감(齒蚶).

② 중권 25목: 정창(丁瘡)·옹저(廱疽)·장옹(腸廱)·동창(凍瘡)·악창(惡瘡)·칠창(漆瘡)·탕화창(湯火瘡)·단독은마(丹毒癮麻)·벌지창(伐指瘡)·표저(瘭疽)·골저(骨疽)·선개과창(癬疥瘑瘡)·전족목죽첨자(箭鏃木竹籤刺)·치루상풍(痔漏傷風)·구장통(口腸痛)·냉열리(冷熱痢)·대소변불통(大小便不通)·임질(淋疾)·소갈(消渴)·소변하혈(小便下血)·음라음창(陰癩陰瘡)·비뉵(鼻衄)·안병(眼病)·이병(耳病)·구순병(口唇病).

③ 하권 12목: 부인잡방(婦人雜方)·소아잡방(小兒雜方)·소아오탄제물(小兒誤呑諸物)·수종(水腫)·중풍(中風)·전광(癲狂)·학질(瘧疾)·두통(頭痛)·잡방(雜方)·복약법(服藥法)·약성상반(藥性相反)·고전록험방(古傳錄驗方).

이상 각 항목의 각 병명 아래 그 병에 해당되는 여러 종류의 치료 방법들이 열거되어 있으며, 약명들은 속명들로 주해하였다. 복약 방법으로 식전·식후·공복 등이 구분되었으며, 복약의 금기(禁忌)와 포(炮)·초(炒)·구(灸)·배(焙) 등의 제약법과 용약에 관한 중량들이 적혀 있어서, 구급의 실용에 편의하도록 편집되어 있다.

또 부록으로 향약목·초부(草部) 아래 향약 180종에 대한 속명·약미(藥味)·약독(藥毒)·채취방법들이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는데, 이로써 그 당시 본초학에 관한 지식의 개요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 구급방이 간행되던 고려 중기 이후 말기는 향약의 연구가 점차 확충되어 많은 향약의 방서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예로 『삼화자향약방(三和子鄕藥方)』을 비롯하여 『향약고방 (鄕藥古方)』·『향약혜민방 鄕藥惠民方』 등 수종의 향약방서들을 들 수 있다.

한편 향명의 표기법은 차자표기법의 여러 모습을 잘 보여준다. 즉 ‘山梅子(郁李)’, ‘朝生亇落花子(牽牛子)’와 같이 음독자(音讀字)만으로 표기된 것, ‘馬尿木·오좀나무(蒴)’, ‘精朽草·솝서근플(黃芩)’과 같이 훈독자(訓讀字)만으로 표기된 것, ‘鳥伊·麻·새삼(菟絲子)’, ‘影亇伊·汝乙伊·그르메너흘이(蠷螋)’와 같이 훈독자의 말음(末音)을 가자(假字)로 첨기(添記)한 것, ‘道羅次·도랏(桔梗)’, ‘伊屹烏音·이흘옴(通草)’과 같이 음가자(音假字)만으로 표기된 것, ‘加火左只·더블자기(茵蔯蒿)’, ‘月老·뢰(薍子)’와 같이 훈가자(訓假字)와 음가자가 혼용된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표기법은 삼국시대부터 시대의 변천과 함께 발달되어 온 여러 표기법을 반영하는 것으로 13세기 중엽까지 이어져 내려온 향찰(鄕札)의 표기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향명들이 보여주는 언어현상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 특징적이다.

‘居兒乎·휘(蚯蚓)’, ‘豆衣乃耳·두(름)의 나(葶藶)’, ‘漆矣於耳·옷의어(漆姑)’에서는 ㅿ음의 존재를 보여주는데, ‘鳥伊麻·새삼(菟絲子)’에서는 ‘y’음과 모음 사이의 ‘ㅅ’이 아직 ‘ㅿ’으로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勿叱隱提阿·슨아(馬兜鈴)’와 ‘勿兒隱提良·아’가 공존하는 것을 보면, ‘ㄹ’음과 모음 사이에서 ‘ㅅ’음이 ‘ㅿ’음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璙음의 쓰임은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15, 16세기의 ‘기울(麩)’이 ‘只火乙·기블’, ‘다리우리(熨斗)’가 ‘多里甫伊·다리브리’, ‘아욱(葵)’이 ‘阿夫實·아보(葵子)’로 표기되어 유성음 사이에서 ‘ㅂ>ㅸ>w’의 변화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음절말에서는 ‘ㅅ’음과 ‘ㅈ’음이 구별되어 ‘鷄矣碧叱·‘鷄矣碧叱·볏(鷄冠)’, ‘天叱月乙·하(括蔞)’, ‘山叱水乃立·묏믈나리(紫胡)’에서는 ㅅ말음을 ‘叱’자로 표기하였고, ‘道羅次·도랒(桔梗)’, ‘獐矣加次·노갖(薺苨), ‘豆也味次·두여맞(天南星)’에서는 ‘ㅈ’말음을 ‘次’자로 표기하여 구별하였다.

향명들 가운데에는 15, 16세기에는 상실되었던 어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더러 있다. 15세기에 ‘자깃불휘’로 바뀐 ‘結次邑笠根·갇불휘(京三陵)’는 ‘짜다(織)’의 뜻을 가진 ‘結次邑·’의 어원이 유지되어 있고, 15세기에 ‘도토밤, 도톨왐’으로 바뀐 ‘猪矣栗·돝밤(橡實)’은 ‘돼지의 밤’이라는 어원적인 의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향명들 가운데는 한어의 약재명에서 차용되어 고유어와 같이 쓰이는 것이 있다.‘者里宮·쟈리공(章柳根)’, ‘注也邑·주엽(皁莢)’, ‘靑台·쳥(靑黛), ‘木患子·모관(無患子)’, ‘鳩目花·구목화(瞿麥)’ 등이 그것인데, 이들은 괄호 속의 한어명에서 차용된 것이다.

또한 한어의 약재명을 번역하여 차용한 것도 있으니, ‘牛膝草·쇼무릎플(牛滕)’, ‘狼矣牙·일히의엄(狼牙草)’, ‘漆矣於耳·옷어(漆姑)’, ‘天叱月乙·하(天瓜)’, ‘所邑析斤草·솝서근플(腐腸)’이 그것으로, 이들은 괄호 속의 한어명을 번역하여 차용한 것이다. 이러한 차용어들은 극히 이른 시기부터 중국의 본초학(本草學)이 우리나라에서 학습되어 보급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상의 약초들 중에 대개는 속명이 적혀 있으나, 인삼·애엽·목단피 등과 같이 속명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있으며, 그 속명들 중 현재의 우리들의 용어와도 거의 일치하는 것이 있으나 그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도 있다. 민간에서 구할 수 있는 약재로 급한 병을 구하는 방문(方文)을 모아놓은 것이므로, 약재나 병의 한어명(漢語名)에 해당하는 우리말〔鄕名〕을 차자(借字)로 기록하여 민간인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표기법은 삼국시대부터 시대의 변천과 함께 발달되어 온 여러 표기법을 반영하는 것으로 13세기 중엽까지 이어져 내려온 향찰(鄕札)의 표기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향명이 13세기 중엽의 국어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국어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남풍현, 「차자표기법 연구 - 향약구급방의 향명표기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1981.
  • 신영일, 「향약구급방에 대한 연구: 복원 및 의사학적 고찰」, 박사학위논문, 경희대학교 대학원, 1994.
  • 이덕봉, 「향약구급방의 방중향약목 연구(완)」, 『아세아연구』12, 한국아시아학회, 1963.
  • 이현숙, 「고려시대 전염병과 질병관 - 『향약구급방』을 중심으로」, 『사학연구』88,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2007.
  • 이기문, 『국어음운사연구』,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