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의공(平義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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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호시대 대마도의 제12대 도주(島主).

개설

조선시대에 일본 강호막부와 조선과의 외교 창구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대마도(對馬島)의 도주(島主)이다. 종의공은 곧 평의공이다. 1773년 2월 29일 평의창(平義暢)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마도 도주 종가(宗家) 제11대인 형 평의공(平義功)이 사망하였기 때문에 강호막부로부터 은밀히 조언을 얻어 대역(代役) 되었다. 1785년에 도주가 되었다.

활동 사항

1811년(순조 11) 조선에서 강호막부의 제11대 장군 덕천가제(德川家齊)의 장군직 계승을 축하하기 위하여 일본에 통신사(通信使)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이 통신사는 외교의례 장소를 강호에서 대마도로 변경하였던 역지통신(易地通信)이었다. 역지통신을 실행하기 위한 교섭은 1788년(정조 12) 10월 평의공이 연빙사(延聘使)인 평창상(平暢常)을 보내 경제적 궁핍을 이유로 통신사 파견 연기를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것은 표면상으로는 대마도주가 요구하기는 하였지만, 그 배후에는 중앙 막부가 있었다. 그러나 이 역지통신은 장소의 변경뿐만 아니라 국서 전달식을 비롯하여 외교의례 전반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마도에서는 여러 차례 사자를 파견하였고(『정조실록』 18년 8월 27일)(『순조실록』 6년 3월 27일)(『순조실록』 8년 4월 21일), 조선에서 일본의 역지통신 제의를 수락하기까지는 2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통신사가 대마도에 파견되어 왔을 때는 평의공이 병이 들었기 때문에 둘째 아들인 평의질(平義質)이 대신 접대를 하였다.

평의공은 1813년 5월 17일 4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

장기현(長崎縣) 하현군(下縣郡) 엄원정(嚴原町)의 만송원(万松院).

참고문헌

  • 三宅英利 著·손승철 譯, 『근세 한일관계사 연구』, 이론과실천, 1991.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허지은, 「근세 왜관 관수(館守)의 역할과 도다 도노모(戶田賴母)」, 『한일관계사연구』 48, 한일관계사학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