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자(晩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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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말~17세기 초 몽골 호르친 부수령.

개설

만자란 망구스(Mangγus)의 와전된 이름으로, 망구스는 우우바(Uuba)의 5촌 숙부이다.

가계

보르지기드(Borjigid)씨로 칭기즈칸의 동생 하사르([哈撤兒], Qasar)의 17대손이다.

활동 사항

1590년대 건주여진의 누르하치가 강력해지자 여진의 여러 세력이 그에게 대항하였는데, 1593년 망구스는 동생 밍간(Mingγan)과 함께 호르친([科爾沁], Khorchin)의 수령 웅구다이(Ungγudai)를 따라 그들과 연합하여 누르하치와 싸웠으나 패주하였다. 1615년 망구스는 자기 딸을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후일 청 태종)에게 시집보냈다. 그 후 망구스의 아들, 손자 2대를 걸쳐 청나라 황제에게 딸을 시집보내 혼인 관계를 맺었다.

1636년 망구스의 손자 만주시리(Manjusiri)에게 자삭(jasaγ) 바아타르(Baγatur) 군왕의 작위를 수여하여 호르친 좌익중기(左翼中旗: 일명 다르한왕 호쇼)를 통치하도록 하였다. 만주시리와 청나라 황실 여인과의 혼인을 시작으로 하여 대대로 청나라 공주와 혼인함으로써 망구스의 가문은 만주 지배기 몽골 왕족들 중에서도 지위가 상당히 높았다.

조선중기 선조대에 남부 주부신충일이 변방 오랑캐의 실정을 보고한 문건에 만자가 등장하였다. 즉, “누르하치가 노획한 몽골 사람 20명을 뽑아 비단옷을 입히고 전마(戰馬)를 태워 그들의 소굴로 돌려보내니 그들이 돌아가 누르하치의 위덕(威德)을 말하였기 때문에, 나팔(剌八)이 차장(次將)인 만자 등 20여 명으로 하여금 호인 100여 명을 거느리고 전마(戰馬) 100필, 낙타 10두를 가지고 와 바치게 하여, 이에 말 60필과 탁타 6두는 누르하치를 주고 말 40필과 낙타 4두는 누르하치의 동생을 주었는데, 그 장령 등에게 누르하치는 모두 후대하여 비단옷을 주었다고 합니다(『선조실록』 29년 1월 30일).”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Хөрвүүлсэн Ц. Цэрэндорж, Манжийн үнэн магад хууль, Бит пресс, 2009. (Ts. 체렝도르지 역주, 『만주실록(滿州實錄)』, 비트프레스, 2009.)
  • Хөрвүүлсэн Ц. Цэрэндорж нар, Зарлигаар тогтоосон гадаад монгол, хотон аймгийн ван гүнгүүдийн илтгэл шастир, Согоо нуур, 2007. (Ts. 체렝도르지 등 역주, 『흠정외번몽고회부왕공표전(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傳)』, 소고오 누우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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