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영(馬丟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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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경위원이자 외교관으로 1897~1898년 주한 러시아 공사를 역임한 인물.

개설

마주영은 마튜닌[Nikolai G. Matiunine]의 한자식 표기이다. 러시아 왕립 알렉산드로 귀족학교(Императорский Александровский лице)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의 우수리 국경위원으로 근무하였으며, 1890년에는 경흥 영사 직무대행으로 위촉되기도 하였다. 1897년 11월에 주한 러시아 공사로 임명되어서 1898년 4월에 한국에 부임하였다(『고종실록』 35년 4월 8일). 1898년 8월에 멜버른 총영사로 임명되어서 1898년 12월에 서울을 떠났다.

활동 사항

마튜닌은 주한 러시아 공사로, 실제 서울에 부임한 기간은 8개월 정도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마튜닌은 공사 부임 이전부터 한국문제에 관여하였다. 1884년 초에 고종은 김관선을 노보키예프스코(Novokievskoe)에 파견해서 우수리 국경위원으로 재직 중인 마튜닌에게 조선이 러시아와 조약 체결을 희망한다는 뜻을 전달하였다. 1897년에는 러시아외무대신무라비요프를 접견하였으며, 그해 9월에는 한국의 군사교관과 러시아 정교회 선교 사업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마튜닌이 한국에 부임하였을 당시 주요 사건은 고종독차사건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그 사건의 주범으로 친러파 김홍륙을 지목하였는데, 마튜닌은 김홍륙을 블라디보스토크로 보내 줄 것을 요구하였으며, 그가 처형되자 재차 무죄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공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마튜닌은 한국문제에 관여하였다. 1900년 12월에 마튜닌은 압록강삼림채벌권 기간 연장을 한국 정부의 이범진에게 요청하였으며, 그 결과 한국 정부는 1901년 4월에 채벌권을 3년 연장해 주었다. 마튜닌이 1902년에 베조브라조프(A.M. Bezobrazov)가 설립한 압록강 벌목회사의 주주로 참여하게 된 배경에는 앞서 채벌권 연장 교섭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러시아문서 번역집』 1~25권,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 자료총서, 선인, 2008~2015.
  • 박종효 편역,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 소장 한국관련 문서 요약집』, 한국국제교류재단, 2002.
  • 임경석, 김영수, 이항준 공편, 『한국근대 외교사전』,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2.
  • 현광호, 「대한제국기 주한러시아공사의 활동-대한제국 수립시기를 중심으로-」, 『대구사학』 83,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