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당(陳樹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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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기의 외교관.

개설

진수당은 주샌프란시스코총영사를 역임하였으며 1882년 10월 조선과 청국 간에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이 체결된 직후 총판조선상무위원(總辦朝鮮商務委員)으로 조선에 파견되었다. 그는 인천·부산·원산에 청국 조계지를 설치하여 청국 상인의 조선 진출과 통상 무역을 확대하는 데 공을 세웠다. 1885년 불거진 조러밀약설 및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 같은 해 경질되어 조선을 떠났다.

활동 사항

1880년 1월부터 1882년 4월까지 주샌프란시스코총영사를 역임하였다. 귀국 후에는 이홍장의 막료로 활동하였다. 1882년 10월, 조선 정부와 청국 정부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였다. 이 장정의 제1조에 따라 청은 조선에 상무위원(商務委員)을 파견하려 하였다. 이홍장은 주샌프란시스코총영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던 진수당의 외교적 능력을 인정하여 그를 총판조선상무위원으로 임명하여 조선으로 파견하였다. 진수당은 이미 임오군란 직후인 1882년 10월 영선사로 청에 파견되었던 김윤식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왔던 경험이 있었다(『고종실록』 19년 11월 5일). 1883년 9월 진수당은 상무위원으로서 조선으로 건너와 10월부터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진수당은 먼저 한성에 상무위원공서(常務委員公署)를 설립하고, 인천·부산·원산 등에도 상무분서(商務分署)를 설립하였다. 또 청국 상인들의 조선 진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인천·부산·원산 등 개항장에 청국 조계지를 설치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고종실록』 21년 3월 7일).

진수당은 조선과 청국 간의 통상 관련 업무뿐만 아니라 조선과 청, 또는 조선과 일본, 서구 열강과의 외교에도 개입하였다. 하지만 상무위원이라는 직함으로 열강과 교섭하기에 어려움을 겪자 이홍장에게 요청하여 총판조선상무위원에서 총판조선각구교섭통상사무위원(總辦朝鮮各口交涉通商事務委員)으로 직함을 변경하였다.

1884년 12월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발발하자 진수당은 이홍장에게 정변의 경과를 보고하였다. 그러나 진수당은 1885년에 대두된 조선과 러시아 간의 밀약설,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 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여 1885년 9월, 3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그의 후임으로 원세개가 주찰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駐紮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로서 파견되었다.

참고문헌

  • 권인용, 「‘이범진사건’의 재조명」, 『명청사연구』 42, 2014.
  • 이은자, 「청말 주한상무서 조직과 그 위상」, 『명청사연구』 30, 2008.
  • 이옥련, 「근대 한국화교사회의 형성과 전개」, 인하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