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선황제(薛禪皇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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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제5대 대칸이자 원나라 시조.

개설

설선황제(薛禪皇帝)는 원나라의 시조 쿠빌라이(Khubilai) 칸의 몽골식 칭호인 세첸 칸([薛禪汗], Sečen qan)을 한자로 음차 표기한 것이다. 쿠빌라이([忽必烈], Khubilai)는 몽골제국 창시자인 칭기즈칸의 손자로 제4대 대칸 뭉케(Möngke)의 동생이다. 원나라의 기원은 몽골 왕조였기 때문에 원의 황제들은 모두 몽골식 칭호가 별도로 있었다. 쿠빌라이의 몽골어 칭호인 ‘세첸 칸’은 ‘총명한 황제’라는 뜻이다.

가계

키야드 보르지긴 씨로 그의 아버지 톨루이(Tolui)는 칭기즈 칸의 막내아들이다. 어머니는 헤레이드 부 옹칸의 동생 자하함부의 딸인 소르학타니(Sorqaγtani)이다.

활동 사항

1251년 형 뭉케가 칸의 자리에 오르자 고비 이남 몽골 및 중국 방면의 대총독에 임명되어 오늘날 내몽골의 금련천(金蓮川)을 근거지로 삼았다. 뭉케의 명을 받아 1253년 오늘날 중국 남부에 있던 대리국(大理國)을 멸망시켰다.

1259년 남송(南宋)을 정벌하러 간 뭉케가 병사하자 그와 함께하였던 쿠빌라이는 먼저 남송의 악주(鄂州)를 공격한 후 1259년 군대를 돌려 북상하여 1260년 음력 3월에 개평(開平)에서 쿠릴타이(몽골 및 북방 유목민의 합의제도)를 열어 대칸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약 4년 동안 동생 아릭부케(Ariγböke)와 대칸 계승분쟁을 하였으며 아릭부케가 항복한 후 도읍을 금나라 중도였던 연경(燕京)으로 옮겼고 1271년 나라 이름을 ‘대원(大元)’이라 하였다.

쿠빌라이 통치 기간에 원나라는 남송을 멸망시키고 오늘날 미얀마·베트남·인도네시아·일본 등을 원정하는 등 몽골제국을 최대의 판도로 확대시켰다.

그러나 몽골 제2대 대칸 우구데이의 손자 하이두 등이 쿠빌라이에 대항하였다. 쿠빌라이 초기부터 영향력 있는 황실 가문들은 독자정권을 수립하였으나 명목상 쿠빌라이의 통치를 인정하고 있었다.

쿠빌라이는 35년간의 치세에서 중앙집권제를 확립하였고 동서를 잇는 국제무역을 발전시키고, 통일지폐 활용, 역참제도 정비를 비롯하여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다방면 조치를 취함으로써 몽골제국은 크게 발전하여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쿠빌라이 사후 그의 손자 테무르가 뒤를 이어 대칸의 자리에 올랐다. 쿠빌라이 이후로 몽골 대칸의 자리는 쿠빌라이 가문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후예들이 대대로 계승하여 17세기 전반에까지 이르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몽골에서 온 서신 내용 중 설선황제가 언급되는데, “조(祖) 설선황제(薛禪皇帝)가 즉위할 때에는 천하가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세종실록』 24년 5월 9일).”는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 『원사(元史)』
  • 김호동, 『몽골 제국과 고려』,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7
  • Ж. Ганболд, Т. Мөнхцэцэг, Д. Наран, А. Пунсаг,Монголын Юань улс, Адмон, 2006. (J. 강볼드. T. 뭉흐체첵, D. 나랑, A. 폰삭, 『몽골의 원나라』, 애드몬, 2006.)
  • Ш. Нацагдорж, Хубилай сэцэн, 1998. (Sh. 나착도르지, 『후빌라이 세첸』, 1998.)
  • ШУА-ийн Түүхийн хүрээлэн, Монгол улсын түүх, Адмон, 2003.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편, 『몽골국 역사』, 애드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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