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합목(馬哈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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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초 오이라트의 수령 중 한 명.

개설

마합목(馬哈木)은 오이라트(Oyirad)의 수령 마하무(Mahamu)를 한자로 음역한 말이다. 마하무는 15세기 초 몽골 오이라트 부의 수령 중 한 명이었다. 몽골 사료에 나오는 바툴라 승상(Batula čingsang)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북원 이후 오이라트는 마하무·대평(大平)·바투볼드([把禿孛羅], Batubolud) 등 셋으로 나뉘어 할거하였으며, 이들 세력 가운데 마하무가 가장 강력하였다.

활동 사항

명나라는 1409년 오이라트의 마하무·대평·바투볼드 등 3명을 왕(王)으로 삼았는데 마하무는 순녕왕(順寧王)이라는 봉호(封號)를 받았다. 또한 명나라는 동몽골의 태사(太師)아룩타이([阿魯台], Aruγtai)를 왕으로 삼아 동·서 몽골이 서로 경쟁하도록 하였다. 이때 몽골의 대칸 본야시리([本雅失里], Bunyasiri)와 아룩타이는 명나라에 대항하였는데, 마하무는 1412년 아룩타이와 본야시리를 격파하고 본야시리를 죽였다. 그리고 카라코룸[和林] 일대를 점령하였으며 본야시리로부터 빼앗은 황제의 옥새인 전국새(傳國璽)를 바치는 조건으로 명나라와 연합하여 아룩타이를 재공격하였다.

하지만 2년 뒤인 1413년 오이라트 세력이 강성해지는 것을 우려한 명나라 영락제는 직접 오이라트 정벌에 나섰고, 이때 마하무는 토올강에서 명 군대와 맞서 싸웠으나 패퇴하였다. 이후 마하무는 1415년에 델벡([答里巴], Delbeg)을 대칸으로 옹립하고 자신은 태사로 자임하였다. 그러나 1416년 아룩타이의 습격을 받은 마하무는 패하여 달아났고 1417년에 죽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명의 영락제가 몽골을 정벌한 뒤 그 내용을 알리면서 조선에 전한 글에 마하무가 등장하였다. 즉, “추격하여 토라하(土剌河)에 이르니, 적수(賊首) 답리파(答里巴), 마합목[마하무], 대평, 파독발라가 그 지혜와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지경을 휩쓸고 왔는데, 병인(兵刃)을 겨우 맞대자 마치 마른 나무가 꺾어지고 썩은 나무가 쓰러지듯이 하였다(『태종실록』 14년 9월 19일).”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Шар тууж (『대황사(大黃史)』)
  • 동북아역사재단 편, 『명사 외국전 역주(明史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2012.
  • Саган сэцэн, Эрдэнийн товч, 1961. (사강 세첸, 『몽골원류(蒙古源流)』, 1961.)
  • ШУА-ийн Түүхийн хүрээлэн, Монгол улсын түүх, Адмон, 2003.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편, 『몽골국 역사』, 애드몬, 2003.)
  • А. Очир, Монголын ойрадуудын түүхийн товч, 1992. (А. 오치르, 『몽골의 오이라드인 약사』, 1992.)[[분류:몽골[蒙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