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보(常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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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초기 활동한 대신으로 조선에 칙사로 온 인물.

개설

상보(常保)는 2등 남작(男爵) 아스한 하판([阿思哈尼哈番], ashan i hafan) 모기타특(毛奇他特)의 아들이다. 청대의 대표적 간신인 화신(和珅)의 아버지 뇨후루([鈕祜祿], niohuru)씨 상보와 동명이인이다. 1714년 아버지인 모기타특이 죽은 뒤, 그의 2등 남작 직위를 세습하였다. 일찍이 감찰 어사(監察御史)를 지냈고, 1722년 내각(內閣) 학사(學士) 겸 예부(禮部) 시랑(侍郞)이 되었다. 이듬해인 1723년에는 칙사로서 예부 시랑의 직함을 가지고 조선을 방문하였다. 상보는 공부(工部) 좌시랑(左侍郎), 성경(盛京) 공부시랑(工部侍郎)을 지냈고, 한군(漢軍) 및 몽골[蒙古] 정백기(正白旗)와 양황기(鑲黃旗)의 호군(護軍) 참령(參領) 및 부도통(副都統) 등을 역임하였다.

활동 사항

상보는 아버지로부터 세습직을 받기 이전에는 시위(侍衛)를 지냈다. 1714년에는 세습직을 받아 2등 남작이 되었고, 감찰 어사를 역임했다. 1722년 내각 학사로서 예부 시랑을 겸하였고, 1726년에는 공부 좌시랑으로 승진하였다가 성경의 공부 시랑으로 옮겨졌다. 당시 상보는 정백기 호군 참령이었는데, 1727년 1월에는 한군 정백기의 부도통(副都統)으로 승진하였다가, 같은 해 4월 몽골 양황기 부도통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해 11월에는 성경 공부 시랑의 업무 문제로 강등되고, 정백기의 호군 참령으로 낮추어졌으나 그해 12월에 다시 한군 양황기 부도통으로 임명되었다. 1728년 7월에는 원임시랑(原任侍郎)의 지위로 한군 정백기의 부도통에 제수되었다.

상보는 1723년 4월 칙사로 파견되어 조선을 방문하였다. 이해 3월 13일 패문(牌文)이 먼저 발송되어 30일에 경성으로 들어왔고, 상사(上使)상보와 부사(副使)액진명전(額眞明全) 및 4명의 통관(通官) 등으로 구성된 칙사 일행은 3월 13일에 출발하여 4월 14일에 압록강을 건넜으며, 같은 달 27일에 한성에 도착하였다. 그는 내각(內閣) 학사겸예부시랑(學士兼禮部侍郞)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강희제(康熙帝)의 시조(諡詔)를 가지고 왔다. 경종은 서교(西郊)까지 나가 상보 일행을 맞이하였고, 환궁하여 조서를 받았다. 이때 상보는 경종을 접견한 자리에서 조선 왕이 선 채로 황제의 안부를 묻는 것은 잘못이라 지적하기도 하였다(『경종실록』 3년 4월 27일).

참고문헌

  • 『청성조실록(淸聖祖實錄)』
  • 『청세종실록(淸世宗實錄)』
  • 『청고종실록(淸高宗實錄)』
  • 『동문휘고(同文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