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지처사(凌遲處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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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잘게 저미거나 사지를 절단하고 머리를 베는 극형.

내용

‘능지(凌遲)’는 ‘능지(陵遲)’로도 쓰며 산의 경사가 완만함을 나타내는 말로, 서서히 목숨을 끊는 완만한 사형 집행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전용(轉用)된 것이라 한다. 중국에서 10~11세기경부터 행해진 극형(極刑)인데, 그 방식은 살아있는 채로 살점을 도려내어 뼈를 남기거나 팔다리를 자르는 것으로, 중국 왕조의 권력 지배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형벌이다.

조선 왕조에서 편찬된 법전에는 능지처사를 규정하는 조문은 없다. 다만 조선 왕조에서 사용하던 『대명률』에서는 이를 규정하고 있다. 『대명률』의 형벌 체제는 태(笞)·장(杖)·도(徒)·유(流)·사(死)의 5형 체제를 기본으로 한다. 그 중 사형(死刑)은 참형(斬刑)과 교형(絞刑) 두 가지를 정형(正刑)으로 하고 있는데, 모반대역(謀反大逆)죄 및 강상(綱常)죄를 범한 자는 능지처사(陵遲處死)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능지처사에 처해진 사례들을 보면 반역죄인·주인을 죽인 노비·남편을 살해한 아내·부모를 살해한 자식에 대한 처벌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이것은 『대명률』에서 능지처사를 규정하고 있는 조문에 부합한다.

하지만 조선 왕조에서는 살을 베는 능지처사는 행해지지 않았던 듯하다. 대신 죄인의 사지(四肢)를 수레에 묶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잡아 당겨서 찢어 죽이는 거열(車裂)형으로 이를 대신했다. 실제 태조 연간에 만들어진 『대명률직해』에는 『대명률』의 능치처사 부분을 ‘거열처사(車裂處事)’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1407년(태종 7)에는 이웃 남자와 통모(通謀)하여 남편을 살해한 부인의 처벌과 관련해 ‘율문에 능지처사가 없느냐’는 국왕의 물음에 신하들은 이전부터 거열형으로 대신했다고 답하고 있다. 능지처사는 조선후기까지 사형 방식으로 존속했으나 1894년(고종 31)에 조칙(詔勅)에 의해 폐지되었다.

용례

刑曹啓 平安道孟山住軍人李莫同妻寶背忌厭其夫 乘病絞殺罪 慶尙道咸昌住前陵直金格家奴李奉毆殺格子長福罪 俱律應凌遲處死 從之(『세종실록』 6년 8월 21일)

참고문헌

  •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
  • 仁井田陞, 『中国法制史研究』1(刑法編),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