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선(荒唐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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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연안에 나타나던 소속 불명의 외국 선박, 혹은 중국에서 불법 어채(魚採)나 밀무역을 하러 서해에 출몰하던 선박.

개설

황당선(荒唐船)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조선 연안에서 불법적인 어채나 밀무역을 하는 것과, 중국 및 일본 사이에 무역을 하던 것이다. 불법적인 어채나 밀무역은 어느 시대에나 나타나는 것으로 연안 경비의 강약에 따라 그 추세가 달라졌다. 반면 중국과 일본의 무역선들은 동아시아의 정세와 관련이 있었다.

16세기 중반 동북아시아는 북로남왜(北虜南倭)의 대외적 위기 상황이었다. 또한 1530년대 이후 일본에서 생산된 은이 국제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은은 조선의 남부 해상을 지나 명나라 강남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교역 루트를 만들었다. 중국인들은 명나라의 해금령(海禁令)을 어기면서 일본의 박다(博多,[하카타])에, 왜인들은 광동 등지에서 거주하며 교역하였다. 이 루트를 항해하던 배들이 조선에 출몰하거나 해상 사고로 인해 표착하기도 했다. 기존 왜구들의 배에는 대부분 왜인만 승선했는데, 이 배들에는 왜인만이 아니라 중국인도 있었다. 이런 배들을 황당선이라고 불렀다. 조선 정부에서는 황당선에 승선한 자들이 왜인들과 더불어 이익을 도모하려고 모의했으므로 중국의 반적(叛賊)이라는 논리로 선박의 물품과 같이 북경으로 송환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왕조실록』에서 황당선은 중종대에 처음 등장한다(『중종실록』 35년 1월 19일). 그런데 『연려실기술』의 변어전고(邊圉典故)에서는 태조대에 사신의 선박을 약탈한 사건을 황당선의 사례로 설명하였다. 이로 볼 때 조선시대에는 황당선의 개념을 상황에 따라 혼용하여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연안에 나타난 외국 선박에 우호적으로 상대할 경우에는 황당선이라고 보지 않았다. 또한 중국과 일본의 국내 정치 체제와 대외 정책의 변화에 따라 황당선의 활동 강도가 달랐다. 예컨대 1680년(숙종 6)에 청나라가 해금령인 천계령(遷界令) 해제를 공표하자 불법적으로 운영하던 황당선이 공식적인 무역선으로 변모하였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황당선은 불법 어채와 밀무역을 목적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소규모로 나타나기도 했으나 여러 척의 배에 수백 명씩 무리 지어 어채와 약탈 행위를 하였다. 예컨대 1738년(영조 14) 7월에는 황해도에 6척의 황당선으로 4백여 명이 몰려와서 상륙한 뒤 진민(鎭民)과 접전을 하고 2명을 살상하였다. 황당선에 대한 연안의 경비 규정이 있었는데, 해상을 감시하는 요망(瞭望)과 황당선을 발견하면 쫒아가서 체포하는 추포(追捕)였다(『숙종실록』 38년 6월 10일). 연해(沿海)의 각 진(鎭)에서는 왜선(倭船)과 당선(唐船)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반드시 정상을 묻고 쫓아 보내는 것이 규정이었다(『영조실록』 29년 7월 25일). 만약 당선이나 왜선으로 파악되지 않으면 황당선이었으며, 황당선을 잡으러 쫓아가는 무사(武士)는 연군(烟軍)이라 하였다(『정조실록』 7년 10월 29일).

그런데 조선에서는 상국(上國)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무력적인 방법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따라서 황당선은 밀무역이나 어채만이 아니라 승무원들이 조선 연안에 상륙하여 약탈을 하기도 하였다(『숙종실록』 29년 9월 21일). 심지어 조선 관리들을 폭행하면서 어채 활동을 하였다. 1734년(영조 10)에 황해도 옹진에 황당선이 출몰했는데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파견한 장교가 도리어 부상을 입고 무기도 모두 빼앗겼다(『영조실록』 10년 5월 6일).

변천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의 군함 및 상선들이 자주 출몰하면서 황당선과 혼동되기 시작했으며, 이양선(異樣船)이라는 말이 새로 등장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村井章介, 손승철·김강일 역, 『동아시아속의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2007.
  • 이민웅, 「18세기 강화도 수비체제의 강화」, 『한국사론』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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