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경전(泰慶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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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있던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신주를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정희왕후처럼 왕보다 나중에 승하한 왕후는 장례를 치르는 시점이 승하한 지 5개월 만에 이루어지므로 혼전은 3년(27개월) 중 22개월 동안 존재하였다.

태경전은 세조의 비 정희왕후의 혼전이다. 정희왕후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윤번(尹璠)의 딸이다. 1483년(성종 14) 정희왕후가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태경(泰慶)’으로 정하고(『성종실록』 14년 5월 1일), 3개월 뒤 광릉(光陵)에 장례를 치렀다. 3년의 상제가 끝난 뒤 종묘의 세조 신실(神室)에 부묘할 때까지 태경전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1483년 3월 30일 정희왕후가 온양 행궁에서 승하하였고, 영순군(永順君)의 집에 빈전(殯殿)을 마련하였다. 3개월 뒤인 6월에 광릉에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梓宮)을 묻고 이날 반우(返虞)하여 미리 마련해 둔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성종실록』 14년 6월 12일). 이때 경복궁에 조성한 혼전명이 태경전이다.

처음에는 옛 동궁을 빈전으로 삼고 전전(前殿)을 혼전으로 삼기로 하였다가 혼전은 다시 옛 동궁에 설치하기로 정하였다. 태경전은 경복궁 안에 있었다. 태경전에서 초우제(初虞祭)부터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練祭), 대상제(大祥祭), 담제(禫祭)를 거행하였다.

1485년(성종 16) 5월 12일 정희왕후의 신주를 태경전에서 받들어 내어서 태묘에 부묘하였다. 따라서 태경전은 정희왕후의 신주를 봉안하기 시작한 1483년 6월 12일부터 3년상을 마치고 종묘에 부묘한 1485년 5월 12일까지 경복궁 옛 동궁에 설치되었다.

변천

혼전은 신주를 부묘한 뒤에는 철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뒤 임진왜란이 발생하여 왜적이 궁궐을 모두 불태웠을 때 경복궁과 그 안에 있었던 태경전도 모두 소실되었다.

참고문헌

  • 『춘관통고(春官通考)』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