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사(胎安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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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재령(載寧)에 있던 절.

개설

태안사(胎安寺)는 황해도 재령(載寧)의 천마산(天磨山)에 있던 절이다. 창건 연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풍광이 빼어나 조선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의 유람지로 널리 알려졌다.

내용 및 특징

태안사는 광해군대의 기록에 보인다. 예컨대 1612년(광해군 4)에 반역을 꾀했다는 혐의로 처형된 김백함(金百緘)이 스스로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은 태안사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다고 진술하였다(『광해군일기(중초본)』 4년 2월 16일). 그는 어보(御寶)관인(官印)을 위조한 김경립(金景立)이 고문에 못 이겨 김백함을 역도의 우두머리라고 허위로 지목함으로써 아버지와 함께 처형되었다. 김경립의 진술에 의하면, 김백함이 아버지의 실직(失職)에 불만을 품고 팔도도대장(八道都大將)이 되어 각 도에 대장과 별장을 임명한 뒤 일시에 도성을 공격하려 했다는 죄목이었다.

변천

조선후기의 학자 김창협(金昌協)의 「송경유람기(松京遊覽記)」에 의하면 천마봉 기슭을 따라 내려가면 태안사가 있었는데, 이곳은 "높은 산봉우리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시냇물이 빙 둘러 있어서 그윽하기가 하나의 깊숙한 별천지였다."고 하였다. 이정구(李廷龜) 또한 중국 사신으로 가는 길에 이곳 태안사에서 투숙했는데, 당시 절은 누추하고 승려들은 많았다고 술회하였다. 그러나 1757년(영조 33)~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成冊)한 전국 읍지(邑誌)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수록되지 않아 폐사(廢寺)된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송경유람기(松京遊覽記)」
  • 이정 편저, 『한국불교사찰사전』, 불교시대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