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혜전(孝惠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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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에 있던 헌종의 계비 효정황후(孝定皇后)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효정황후처럼 왕보다 나중에 승하한 왕후는 장례를 치르는 시점이 승하한 지 5개월 만에 이루어지므로 혼전은 3년(27개월) 중 22개월 동안 존재하였다.

효혜전(孝惠殿)은 헌종의 계비(繼妃) 효정황후의 혼전이다. 효정황후는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의 딸이다. 1904년(광무 8) 효정황후가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효혜(孝惠)’로 정하고(『고종실록』 41년 1월 7일), 3개월 뒤 경릉(景陵)에 장례를 치렀다. 3년의 상제가 끝난 뒤 종묘의 헌종 신실(神室)에 부묘할 때까지 효혜전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1904년 1월 2일 효정황후가 경운궁 수인당(壽仁堂)에서 승하하자 흥덕전(興德殿)에 빈전(殯殿)을 마련하였다. 3개월 뒤인 3월에 헌종의 무덤인 경릉의 동원(同原)에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梓宮)을 묻고 반우(返虞)하여 미리 마련한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고종실록』 41년 3월 15일) 이때 경운궁에 조성한 혼전명이 효혜전이다.

효혜전은 경운궁 인소전(仁昭殿)에 설치하였다(『고종실록』 41년 1월 3일).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경운궁 안에 있었다고 되어 있다. 혼전이 존재한 동안 효혜전은 효정황후를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였다.

효혜전에서 거행한 의식은 일반적으로 혼전에서 거행하는 것과 같은 절차를 밟았다. 반우한 날 초우제(初虞祭)를 시작으로 칠우제(七虞祭)까지 우제를 지낸 뒤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練祭), 상제(祥祭), 담제(禫祭)를 모두 효혜전에서 거행하였다.

1906년(광무 10) 2월 17일 부묘 하루 전, 고종이 효혜전에 나아가 고동가제(告動駕祭)를 행하고, 다음 날인 2월 18일 효정왕후를 태묘에 부묘하였다. 따라서 효혜전은 효정황후의 신주를 봉안하기 시작한 1904년 3월 15일부터 3년상을 마치고 종묘에 부묘한 1906년 2월 18일까지 경운궁의 인소전에 설치하였다.

변천

혼전은 신주를 부묘한 뒤에는 철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효혜전이 있었던 경운궁의 인소전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참고문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효정왕후국장도감의궤(孝定王后國葬都監儀軌)』
  • 이현진, 「조선 왕실의 혼전」,(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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