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宗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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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종손(宗孫)으로 대를 이어 온 본가(本家).

개설

종가는 대대로 맏아들로 내려온 본가이다. 종법(宗法)에 따라 대종(大宗)과 소종(小宗)으로 구분되며, 본가 중에서 그 내려온 역사가 가장 깊은 종가를 대종가(大宗家)라 한다. 대종손의 차남의 맏아들이 오랜 세월 내려오면서 또 다른 종을 이루면 차종가(次宗家)라 한다. 이들이 별도의 파로 분파되었다면 파종가(派宗家)라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종가는 대종과 소종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대종은 적장자 상속으로 이어진 본가이고, 소종은 대종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같은 고조부에서 갈라져 나온 일족을 가리킨다(『세종실록』 12년 10월 29일).

종가의 당주(堂主)는 종손(宗孫)이고 그 부인을 종부(宗婦)라고 한다. 종손은 맏이로서 대를 잇는데, 아들이 없을 경우 양자를 들였다. 이들의 중요 역할로는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을 들 수 있다.

종가의 의례와 가풍은 종원들이 일상에서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써->서 의미를 가지며, 종원들 역시 보편적으로 이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향을 토대로 문중이 결성되고 족보가 편찬되었다. 이로써 종가는 문중과 족보를 비롯한 족적 활동에서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변천

종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 즉 송나라 사대부들이 자신들도 대종을 구성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시기는 고려후기로 잡을 수 있지만 이것이 실현되는 시기는 조선중기라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종가를 소종 내에서 본가 정도로 인식하였다(『세종실록』 11년 4월 22일).

16세기 중반에 이르면서 사당 제사에 비해 소홀했던 묘제(墓祭), 즉 조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에 대한 규정이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명종실록』 18년 12월 26일). 이러한 추세는 묘제를 비롯한 문중의 제사를 주재하는 주체로 대종가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종화의 추세는 선조에 대한 묘제사에서 비롯되었고, 4대봉사(四代奉祀)를 전제로 기제(忌祭)에서 묘제로 넘어가는 시점을 계기로 나타나는 친족의 조직화 양상은 소종의 대종화 과정으로 이해된다.

종가의 대종화는 족인의 조직화를 비롯해 족보의 편찬과 문중의 결성 그리고 문헌(文獻)의 편찬 및 현조(顯祖) 유적지의 선양 등을 수반하였다. 종가의 위세를 유지하고 높이는 일은 다른 종원들의 사회적 지위와 맞물려 문중 전체의 관심사였다. 한편으로 종가와 문중은 문중의 재산을 둘러싸고 상호 협력하거나 때로 대립하는 관계에 서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이순형, 『한국의 명문 종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 김미영, 「혈통과 사회적 위세에 따른 종가의 위상 :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역사민속학』21, 2005.
  • 정승모, 「종가 문화의 기원과 실체」, 『한국계보연구』3, 2012.
  • 최재석, 「조선시대의 족보와 동족 조직」, 『역사학보』81, 1979.